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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vel

글 / TR / 무제

 

 

 손을 뻗었다면 좋았을텐데.

 뻗지 못 해서.

 무너져 내렸다.

 

 

 

*

 

 

 

 난 곳은 아마도 심연 어딘가. 

 언제 어떻게 생겨났는지도 모를 그것은 이질적인 모양을 하고 있었다.

 하체는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생물의 형태와 닮았고 그렇지 않은 상체는 짙은 색이던 아래와는 달리 밝은 색의 얇은 비늘로 덮여 있다.

 머리 부분에 뭉쳐 있는 길고 가는 실은 다시 아랫부분과 같은 어두운 색으로 바닥 곳곳에서 자라는 어두운 해초의 색과 매끈한 질감이 유사했다.

 머리 아래 달린 아가미 근처에 유달리 긴 팔이 있는데 물갈퀴가 달린 것 외에 별 기능을 하지 못 하는 이 신체부위는 대단히 비효율적이다. 위협적인 발톱이나 날카로운 가시가 있는 것도 아니기에 공격이나 방어 수단으로 써먹을 수 없고 헤엄을 치기 위한 갈퀴의 특성상 1자로 뻗은 손등은 막이 달린 뼈대를 쥐었다 폈다 할 수도 없기 때문에, 어느 정도 크기가 있는 물체가 아닌 한 두 손바닥으로 잡을 수도 없었다.

 그렇다고 본연의 의무인 헤엄을 치는데 도움이 되냐면 그것도 아닌 것이, 굴곡 없이 매끈한 몸체를 가진 대다수의 생물들과 달리 어떻게 몸에 붙여놔도 옆에 상대적으로 튀어나와있는 팔 때문에 받는 물의 저항이 늘어난다. 둥근 하반신과 달리 가로로 넙적한 상반신도 이에 크게 한몫했다.

 

 종합하자면 이 뭔지 모를 생물은 장점이랄 것 하나 없이 그 생김새만이 가장 큰 특이성이며, 드넓은 바다 속 그 어느 무리에도 섞이지 못 한 채 살아있기만 할 뿐인 그런 것이다.

 깊은 물색과 환한 밤 물 밖으로 고개를 내밀면 볼 수 있는 달과 별의 색의 서로 다른 두 눈을 가진 그것은 정해진 영역 없이 흘러가는 대로 끝없이 돌아다니며 홀로 하루하루를 보냈다.

 

 어느새 떠올리지도 못 할 정도로 아득해진 소망은 숨긴 채로.

 아직 어린 아이는 숨을 쉬고 있었다.

 

 

 

*

 

 

 

 어두운 하늘에 어두운 물 속.

 평소에는 분리되어있던 경계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뒤집힌다.

 아래에선 위에 보이는 것을 집어 삼키려 높이 솟구쳤고 위에선 그런 아래를 강한 빗줄기로 내리꽂으며.

 원래라면 잠잠해야 할 표면이 하얀 물보라를 일으키며 요동치니, 근처에 있던 생물들은 진작 대피를 했거나 이 소란에 휩쓸리지 않게 바닥 틈새에 몸을 끼우고 이 난리가 멈추기를 기다렸다.

 마침 그 자리에 있던 어린 것 또한 드물게 도움이 된 길기만 한 두 팔로 곁에 있던 바위를 감싸 몸을 고정한 채로 숨어있었다.

 머리를 바닥에 박고 한창 숨을 죽이던 중 비늘에 내내 느껴지던 것과는 조금 다른 파동이 닿아왔다.

 아주 잠시였지만 그 낯설음을 감지한 아이는 두려움과 호기심 사이에서 고민하다, 이내 방금 느낀 파동의 근원지로 추정되는 지점까지 지느러미를 움직였다.

 

 머지않아 눈에 그 아이와 비슷한 크기인 그림자가 들어왔다.

 움직인다. 그리고 가라앉는다.

 간간히 나오는 기포 몇 방울은 그 무언가를 놔두고 혼자 위로 올라가다 물살에 휩쓸려 사라졌다.

 버둥거리는 모양새가 꼭 유유히 헤엄치던 생물들이 뭔가를 잘못 삼키곤 뒤집힌 채 둥둥 떠다니게 되기 직전의 모습들과 닮았기에, 위급함을 느낀 아이는 황급히 그것에게 다가갔다가 예상치 못 한 생김새에 놀라 다시 화들짝 떨어졌다.

 

 매끈거리는 비늘도 막도 없이 그대로 부착되어 있는 두 팔.

 물 속의 산소를 흡수하기 위한 아가미는 목 주변 어디에서도 보이지 않았다.

 몇 가지 부족하긴 하나, 이 자의 몸은 제가 그간 스스로의 몸에서 확인해왔던 모양과 여러 곳이 닮아있다.

 익숙한 곳에서조차 섞이지 못 하고 남아버린 반쪽.

 산호와 닮은 색의 털이 머리 부분에만 빽빽하게 들어차 뭉텅 채로 흔들렸다.

 신기함에 구석구석 살펴보는 사이에 필사적이던 움직임이 차차 멎어간다.

 마지막으로 입 밖으로 새어나온 작은 기포, 더 이상 어떤 반응도 보이지 않고 정지해버린 몸을 본 후에야 당황해 아이는 힘이 빠진 몸을 끌어안고 황급히 위로 올라갔다.

 물 밖으로 머리를 내밀면 여전히 수면 위로 떨어지는 빗줄기가 얼굴을 때렸다.

 

 몰아치는 파도 사이로 고개를 돌려가며 움직일 방향을 찾으니 저 멀리서 희미하게 이어지는 선율이 귓가에 닿았다.

끊어질 듯 말 듯 한 소리를 향해 헤엄치면 안긴 몸체와는 별개로 고정되지 않은 작은 팔이 물살에 따라 흔들렸다.

 분명 따뜻했던 몸은 어느새 주변만큼 차가워져 있다.

 자세히는 모르지만 이대로 한 순간이라도 더 지체되어선 안 된다고 본능이 경고한다.

 위에서 쏟아지는 물방울도 아래에서 튀는 물방울도 아프다. 하지만 지금은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지 않는다.

 정신이 몽롱해질 정도로 헤엄치자 그새 찢어진 지느러미에 모래가 닿았다. 더 이상 몸을 세울 수 없는 수준까지 낮아진 수위에 자연스레 상체를 낮추고 팔꿈치를 사용해 엉금엉금 기어 품에 안은 것을 최대한 물가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옮겨 눕힌다.

 아직도 힘없이 멈춰 있는 몸을 어찌해야할지 몰라 이곳저곳을 만져보다 복부를 누를 때 움찔하는 걸 눈치 채고 넓적한 두 손을 모아 몇 번 반복하여 누르자, 작은 몸이 요동치며 가득 삼켰던 물을 뱉었다.

 몸을 옆으로 돌려 속에 남아있는 것까지 마저 토할 수 있게 도우니 거센 기침소리가 연이어 들려왔다.

 거친 숨소리가 조금씩 진정되며 닫혀있던 두 눈이 열렸다.

 

 머리의 빽빽하게 들어차있는 실들과는 조금 다른 아름다운 색.

 신비한 색에 매혹되어 그에 좀 더 가까이 다가가고자 했을 때, 어느새 나타나 근처까지 다가온 인기척에 놀란 아이는 서둘러 주변에 보이는 바위 뒤로 몸을 숨겼다.

 일어서지 못해 질질 끌린 몸이 만든 흔적들은 아직 다 그치지 않은 비와 계속 밀려들어오는 파도로 깨끗이 지워졌다.

 몸을 숨기고 얼마 안 되어 누군가 아이가 그 자리에 두고 온 것을 발견했다.

 이내 그 자리에 모인 머릿수는 더 많아져, 이를 지켜보던 아이는 들키지 않게 더 몸을 낮게 숙여 자리를 벗어났다.

 

 

 

*

 

 

 

 겁 없이 움직이던 것들을 전부 집어삼킬 듯 몰아치던 세상이 다시 조용해지고 언젠가 찢어졌던 지느러미가 나은 이후로도, 그 아이는 그 때 본 색을 잊지 못 하고 있었다.

 

 한순간 느낀 동질감.

 비록 반 뿐 이지만 평생을 섞이지 못 한 쪽이 아닌 다른 쪽.

 어쩌면 이번엔 받아들여질지도 몰라. 희망을 새로 품게 된 그 아이는 꿈을 가졌다.

 다시 그때 그를 만나게 해 달라고, 간절하게 빌고 빌던 어느 날.

 

 기적은 이루어졌다.

 

 

 

*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 아이, 카게히라 미카는 이곳에서도 받아들여지지 못 했다. 

 어느 날 해변에 밀려와 익숙한 꼬리 대신 한 걸음 내딛을 때마다 유리로 찌르는 듯한 아픔을 참으면서까지 두 다리로 땅을 딛은 그 아이는, 그대로 시설이라는 곳에 주워져 그 곳의 말과 생활습관을 배우고 새로운 이름을 얻었다. 몸을 뒤덮던 점막도, 가는 손가락 사이를 채우던 막조차 사라져 그 겉모습은 이제 어딜 보나 주변에 보이는 이들과 머리부터 발끝까지 유사해졌다.

 -그렇다고 생각했지만, 다른 사람들에게는 그렇지 않은 듯.

 본래보다 그들과 훨씬 비슷한 모습 임에도 인간이라는 자들은 끊임없이 아이에게서 다른 점을 찾아 자신들과 구분 지었다.

 여지껏 직접 볼 일이 없어 이상하다고 인식조차 하지 못 했던 서로 다른 눈 색으로 밀어내진 아이는 꿈을 가진 곳에서 다시 한 번 혼자가 됐다.

 

 그냥 홀로 남는 것 만이라면 처음 상태로 돌아갔을 뿐이지만 이번에는 상황이 달랐다.

 배척. 거부. 단순히 무리에 끼게 하지 않는 것으로 멈추지 않고 온갖 조롱과 모멸 섞인 말로 아이를 밀어냈다.

 때로는 걱정스럽게, 때로는 가열차게.

 사소한 차이를 이해하지 않는 그들에게, 아이는 바보처럼 웃어보였다.

 사람에 대한 기대는 끊었다.

 결국엔 똑같은 의미인 말들도 믿지 않는다.

 이 안에 섞이고 싶다 생각한 스스로가 바보 같이 느껴질 정도로 추악하다.

 

 그렇기 때문에, 아이는 그에 대한 동경을 놓지 못 했다.

 이 세상에 태어나 처음으로 본 ‘인간’.

 비록 좌절했을지라도 처음으로 희망을 품게 해 준 사람.

 어쩌면 그 사람이라면. 이런 나도 받아들여줄지도 모른다고.

 그 사람이라면.

 그래서 우연히 화면 너머로 그를 보게 되었을 때.

 그 아이는 홀린 듯이 눈을 떼지 못 했고.

 

 얼마 안 가 그 곳으로 향했다.

 

 

 

*

 

 

 

 “눈이 잘못 끼어졌군.”

 

 

 서로 다른 두 눈 색.

 

 

 “하지만, 아름다운 얼굴이구나.”

 

 

 그럼에도 받아들여준 사람.

 

 

 

*

 

 

 

 처음 본 그 때에서 훌쩍 자라있었지만 완전히 다르진 않다.

 같은 색, 같은 모습, 같은 눈. 멀리 있어도 한 눈에 알아볼 수 있을 그 사람은 조금 변했더라도 그 기억 그대로.

 그런 사람이 자신을 받아들여주고 곁에 있어도 된다고 허락해준 것이 행복하여.

 

 

 ‘네가 그런 꿈을 가지게 된 계기가 된 그가, 너를 기억하고 있지 않다면 너는-’

 

 

 소원이 이뤄졌을 때 들려왔던 목소리가 다시 귓가에 맴돈다.

 재차 들려온 문장과 제한 시간.

 이 순간이 영원했으면 좋겠다.

 그래서 그 아이는 그에게 물었다.

 

 

 “내는 바다가 그리 친숙하고 좋드라. 캐서 베란다서도 바다가 보이는 게 글케 좋다 안카나. 스승님도 글나?”
 “쓸데없는 걸 묻는구나. 호불호에 대해서 묻는거라면......그닥 좋아하진 않는단게야.”

 “글나? 근처에 있으니께 스승님도 어릴 땐 자주 나가 놀았을 줄 알았제. 옛날에 혹시 그랬던 적이 있을지도 모르구.”
 “그리고보니 어릴 적에 집안 사람들이 단체로 바다로 휴가를 간 적이 있었지.”
 “그거 좋았겠데이. 재밌었을 것 같고.”
 “...아니. 그때 분명 갑자기 날이 변해 사고가 일어났다고 했다. 불시에 태풍을 만나 배가 뒤집혔다 하던가.”

 “응앗!? 그거 큰일 아이가? 다들 괜찮았던거제? 지금 스승님도 여기 있고 다들 무사하셨던 것 같으니까 다행히 구해진 것 같지만서두. ...혹시 스승님 그 때 기억나는 거라도 있나?”
 “기억은, 없군.”
 “----에?”
 “가족들은 모두 구명보트에 탔지만 나는 그 때 제 시간에 타지 못 했다고 하는 게야. 다행히 근처 해변까지 밀려가 살 수 있었지만. 추후 병원에 가보니 당시 목숨이 위험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트라우마를 남기지 않기 위해 뇌가 무의식 중에 당시의 기억을 지운 것 같다더군. 적어도 지금의 내겐 두렵거나 하지 않지만 어쨌든 바다는 그리 달갑지만은 않은 게야.”
 “.....글쿠나. 잊었단 말이제.”

 “뭔가 할 말이라도 더 있는 게냐, 카게히라. 오늘따라 유독 끈질긴 것 같군.”
 “아니. 그런 거 없다. 기냥 스승님한테 큰 일이 있었구나~ 싶어서. 지금은 괜찮아졌데서 다행이데이.”

 

 

 분명 그라면 어설픈 그 표정에서 무언가를 읽었겠지만 구태여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자기 보호를 위해 지워진 거라면, 이를 되살리는 건 그를 해칠 수 있는 기억을 부러 들춰내는 것.

 지금은 괜찮다고 말했지만 과연 그러는 게 그를 위한 것일까.

 만약 떠올렸을 시 그는 어떻게 될까.

 혹시 자신이 바라는 게 그에게 상처를 주는 일 일까봐.

 그 아이는 그 자리에서 차마 손을 뻗지 못 했다.

 

 

 

*

 

 

 

 날이 맑았다.

 기울어지는 해가 쾌청하다.

 이런 날씨라면 사라지는 것도 나름 괜찮을지 몰라, 그 정도로 좋은 날씨였다.

 그 이후로 혹시나 그가 그 순간을 떠올릴까봐 무서워 일부러 그 화제를 꺼내지 않았다.

 만약에라도 그가 괴로워하는 게 무서웠다.

 가정할 뿐인데도 가슴이 아프다.

 그런 모습을 보느니 이쪽이 낫다고.

 

 그를 만났고, 그 곁에 있었고, 본래라면 여전히 혼자였을 자신에게 분명한 의미가 생겼다.

 이걸로 만족한다.

 

 태어난 바다 밑으로 해가 잠긴다.

 잠기며 하늘과 바다 온 곳의 자신의 흔적을 남기며 꺼져간다.

 지금 온 세상에 저리 강렬히 흔적을 남기면서도 다음날이 되면 아무 일 없단 듯이 떠오를 그것이, 아무것도 남기지 못 한 채 사라질 자신과는 너무 달라서.

 그 모습을 차마 바라보지 못 하고 등을 돌렸다.

 노을을 등지고 베란다 난간에 기대면 손발 끝에서부터 하얀 물거품으로 변해간다.

 이것이 파도가 일 때 생기는 모습과 닮아 떨어진 곳의 소리가 바로 근처에서 울리는 착각 속에 휩싸여.

 몸을 세우고 있던 두 다리가 점차 제 기능을 하지 못 해 중심을 잃는다.

 

기대고 있던 몸이 그대로 뒤로 기울며, 아이는 눈을 감았다.

 

 

 

*

 

 

 

 평소에는 먼저 가라고 해도 꿋꿋이 기다리던 그 아이가 왠일로 자신에게 말하지도 않고 먼저 돌아간 것이 의아했다. 위화감은 그대로 그치지 않았고, 처리하려던 일은 손에 잡히지 않아 결국 그는 예정보다 훨씬 일찍 부실을 나섰다.

 

 문을 열고 들어가도 평소라면 있을 기척이 느껴지지 않았다. 꺼림칙함에 조심조심 발걸음을 옮기다 찬바람이 들어오는 방향에서 멈춰 섰다.

 

 

 “카게히라......?”

 


 그리고 본 것은 새하얀 물거품.

 어두워지는 시야, 멀어지는 정신 유일하게 또렷히 보이던 기포. 그리고 눈 앞에 아른거리던 해초색 머리카락.

 기억 저편에 밀어두곤 다시 떠올릴 생각도 하지 않았던 그 때 그 상황.

 저 물에 젖은 머리카락과 물거품을 본 적이 있다.

 

 생명이 꺼지던 그 순간 새겨졌던 그 모습이 머리 속을 뒤덮는 와중,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도 알지 못 한 채.

 이츠키 슈는 서 있던 자리를 박차고 달려가 사라져가는 그 팔을 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