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막
“오늘 이 자리에서 들려줄 이야기는,”
유메노사키의 아이돌에게는 춤추고 노래하는 것 이외에도 상당히 많은 오퍼가 들어온다. 외부 축제를 홍보한다든지, 연극 무대에 나선다든지, 뭐 그런 종류의 것들 말이다.
“수백 년간, 아니 아마 이 자리에서는 79년 동안이겠지만, 클리셰로 쓰이다못해 닳고 달아서 거의 척수에 주입될 정도로 뻔한 이야기다.”
Valkyrie가 맡은 일은 그중에서도 동화 구연이었다. ‘Valkyrie의 격을 떨어뜨리는 일에는 나서지 않도록 하겠다.’ 그런 철칙을 깨버린 천박한 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분명 있을 만한, 그런 일이었다.
“그래, 피노키오 이야기. 이 자리에 있는 모두, 그리고 나와 나의 카게히라도 못이 박히도록 들어서 그대로 말했다가는 삼십 분은 고사하고 삼십 초 만에 나는 썩은 토마토 세례를 받게 되겠지.”
그리고 예상대로랄까, 예상 외랄까, 동화 구연이라는 어린아이에게 먹힐 소재를 들고 왔는데도 불구하고 온 사람들은 전부 그들의 또래였다. 어쩌면 그들은 그리무아르 같은 것을 기대하고 온 것일까? 슈에게는 아무래도 좋았다. 처음부터 슈가 노린 것은 뻔한 어린이를 위한 동화 구연이 아녔다. 누군가는 이 플랜 B를 보고 ‘이츠키의 종잡을 수 없는 변덕’이라고 하겠지만, 이것이야말로 그에게는 플랜 A였던 것이다.
“그럼 여기에 변주를 가해 보면 어떨까?”
손을 튕겨 보이자, 샹들리에 줄이 끊어지는 소리가 났다. 다음 순간, 조명이 꺼지고, 샹들리에가 박살나는 둔탁한 소리가 났다. 무대 사고는 아니다. 그 사고 이후로 슈는 무대의 모든 것을 완벽하게 휘어잡을 수 있도록, 480분 전부터 무대를 세팅하는 것을 선호했고, 그렇게 해주지 못하겠다는 곳에서는 오퍼가 들어와도 뿌리쳤으니까. 그 샹들리에는 저온 초를 담고 있는 설탕 재질이었다. 물론 금속 파편이 있기 때문에 마냥 안전하지는 않지만, 분위기를 내기 위해 미처 치워지지 않은 보이지 않는 유리를 밟으면서 위험을 감수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슈는 이후 안주머니에서 광원을 꺼내며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코트 안쪽에서 등불 모양 랜턴을 꺼내서 켜 보인 뒤, 슈가 이렇게 말했다.
“그럼 시작하지. 지미니가 버린 제페토와, 코가 길어질 수 없었던 피노키오의 이야기.”
막이 올라가며 다시 은은하게 조명이 들어왔다. Valkyrie의 달콤씁쓸한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 21세기 동화 ‘피노키오.’ 이제 시작이다.
Anima
“시작은 모두가 아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어느 변두리의 마을에 이름난 목공 제페토가 살고 있었지.”
‘제페토’로 분한 이츠키 슈는, 도끼에 조각칼을 들고 고딕풍의 정장을 입고 있다는 뭔가 통념상 어울리지 않는 모습으로 자기 이야기를 읊으며 뒤돌아 앉아 있었다. 일반적으로 이런 식의 공연을 할 때 소조나 조각 등을 연기할 일이 있다면 배우는 깎는 시늉만 할 뿐 구태여 공들여 직접 조각을 행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슈는 달랐다. 심지어는 막대기 하나를 깎는 것으로 갈음할 수 있다고 하는데도 불구하고 자기가 제페토라도 된 마냥 인형을 처음부터 깎기 시작했다. 이 때문에 목공 도구와 나무에 상당히 예산이 책정된 것을 보고 질겁을 한 사람도 있었으며, 오랜 친구 키류 쿠로 역시 리허설을 보고는 이런 식이라면 구연이 루즈해진다고 몇 번이고 슈를 설득한 끝에야 구 할의 부품을 미리 조립하는 선에서 타협점을 찾을 수 있었다.
“제페토 하면 모두 인자한 할아버지 상이나 적어도 ‘보통 사람’을 생각하는 사람을 생각하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텔레비전에서는 항상 피노키오를 걱정하는 인자한 이미지로 그려졌고, 그렇지 않더라도 이야기의 축은 항상 피노키오에게 있었지. 제페토의 면모는 별로 부각되지 않았으니까.”
그 말을 하더니 슈가 갑자기 살기가 띄워진 표정으로 나무토막을 내려다보며 일어섰다. 지금이 연기라는 전제가 없었다면 누구라도 질색할 만한 일이었다. 이내 슈가, 아니 ‘제페토’가 도끼를 앞으로 내던져 대각으로 조각하던 인형을 반으로 갈라버리고, 거짓말같이 차갑게 등불을 집어 들었다.
“우리의 제페토는 조금…… 특이했다. 어느 날부터 제페토는 이런 말을 입에 달고 살기 시작했지. ‘이건 아닌 게야!’”
마지막 마디에서는 마치 성난 범의 울부짖음과도 같은 위압감이 느껴졌다. 관중은 물론이고 막후의 관계자들까지 한순간 얼어붙어서 조명을 조작하는 것을 잊어버릴 지경이었다.
“어느 날부터 제페토는 작품을 완성하는 일이 드물어졌다. 나무가 패대기쳐지는 일은 일상다반사에 누가 찾아오건 말건 고함을 쳐대고 작업을 맡을 생각은 하지도 않으며 그전에 맡은 작업도 차일피일 미뤄지곤 하느라.”
그제야 조명 관제사들이 자기 일을 깨닫고 밤이 되었다는 듯 서서히 조명을 내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제페토 주변에서 사람들이 하나둘 떠나기 시작하던 어느 날의 이야기였다.”
다시 은은하게 바닥에 빛이 깔렸다. 일반과 여학생 한 명이 화려한 순백의 옷을 차려입고 들어왔다. 하얀 로브에 금은 테가 수놓아진 예복을 입고 등 뒤에는 철골조 날개를 간신히 받치고 있었다. 천사라기보다는 데우스 엑스 마키나(deus ex machina)―기계장치를 타고 내려온 신, 다만 조금 더 그 의미를 문자 그대로 받아들인 것만 같은 모양새였다. 진실은 알 수 없었지만, 이것 역시 수예부의 불세출의 천재, 이츠키 슈와 카게히라 미카 자신들의 작품이었으리라.
“제페토여. 일어나세요.”
‘천사’는 가만히 침상 옆에 서서 손을 모으고 ‘괴팍한 목수’를 호명했다. 은은하게 조명이 들어오나 싶더니, 강한 빛과 함께 제페토가 갑자기 일어나며 옆에 있는 도끼를 잡았다.
“장막이 드리워진 죽은 자의 시간에 나의 안식을 방해하는 자 누구냐.”
물론 대본에 있는 내용이었겠지만 이런 슈, 아니 이제는 제페토와 구분하는 것이 무의미한 이의 돌출행동에도 천사는 당황하지 않고 침착하게 왼손으로 도끼를 내리누르며 미소를 지어 보이며 답했다.
“그대의 소원을 듣고 왔습니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완벽한 작품을 만들어 보고 싶다,’ 그리고 ‘사실은 외로운 삶에서 벗어나고 싶다.’ 맞죠?”
제페토는 동요했지만 이를 겉으로 드러내지 않고 여전히 흉흉한 적개심을 드러내며,
“그것이 내 소원이라면 어찌할 것이냐? 네까짓 것이 나에 대해 무엇을 안다고 감언이설을 늘어놓는 것인가.”
이렇게 답하였다. 천사가 직접 답하는 대신 크랭크 같은 것으로 끌어 올려지듯 천사의 날개가 천천히 펼쳐졌고, 이내 막이 잠깐 내려왔다가 올라갔다. 마술 쇼를 보는 듯 거짓말같이 방금 무참하게 도끼로 때려 부수어진 조각의 잔해가 사라지고 그 자리에 금안과 벽안의 오드아이에 앉은키만 가지고도 위압감이 느껴질 정도로 컸다만 외려 앳되고 귀여운 이미지였던 Valkyrie의 ‘차기 제왕’―
“응아앗?”
“일어나세요, 그대의 이름은 이제 ‘피노키오’입니다.”
‘카게히라 미카’가 ‘피노키오’로 분하여 나타났다.
“실패작이 일어서서 움직이고 말까지 하다니!”
‘제왕’ 이츠키 슈는 아까라고 안 그랬던 것은 아니지만 더욱더 자기 안에 제페토를, 하지만 사람들이 알고 있던 것과는 한참 다른 편집증적인 의심암귀 제페토를 체화시켰다.
“피노키오, 인사하세요. 당신의 아버지, 제페토입니다.”
“제페토…….”
피노키오가 제 역할에 걸맞은 나무 코와 노란 모자를 달고 ‘스승님’ 이츠키 슈이되 극 중에서는 자신의 창조주 제페토로 받들어 모셔야 할 이에게 경의를 표했다. 제페토는 그저 콧방귀를 뀌며 다시 드러누울 뿐.
“자, 피노키오. 그대는 영혼이 있고, 살아 움직이지만 아직은 나무 인형일 뿐이에요. 특히 불완전한 생명에 대한 대가로 거짓말을 할 때마다 코가 길어지는 저주와 함께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 정말로 진실된 행실을 보이고, 인간다운 모습을 갖출 자격이 있어 보이면 진짜 인간으로 만들어 줄게요.”
“진짜…… 인간…….”
피노키오는 익숙지 않은 여러 단어를 들으며 되뇔 뿐.
“제페토, 당신은 창조주이자 보호자로서 피노키오를 잘 돌봐줄 것을 맹세하나요?”
제페토는 답하지 아니하였다.
“제페토.”
천사가 다시 한번 말하자 그제야,
“운명을 빙자해서 나에게 굴레를 씌우다니, 당치도 않은 소리다.”
제페토가 돌아누우며 뱉었다. 그 마디에 마냥 인자하던 천사의 표정이 조금 일그러졌다.
“……유감스러운 대답이군요. 하지만 믿고 있겠어요, 제페토.”
그리고 막이 내려갔다.
“이렇게, 제페토가 감당하지 못할 짐이자 최대의 선물, 피노키오가 탄생했다.”
막 너머에서 슈가 다시 제페토의 가면을 벗고 그 자신으로 돌아와서 읊었다.
Shackle
막이 올라갔고, 다시 태양을 나타내는 듯한 하얀 조명이 은은하게 제페토와 피노키오에게 깔렸다. 피노키오는 먼저 일어나서 책장을 뒤지며 구석구석에서 교과서로 쓸만한 책을 뒤지고 있었다. 어째서, 무슨 이유로 자식을 들일 생각은 고사하고 누굴 가르칠 생각도 없었던 제페토에게 초등학교 수준의 책들이 있었는지는 그 어떤 매체에서도 제대로 다루어지지 않는다. 제페토의 책이었다고 끼워 맞춰 보려고 해도 강산이 몇 번 바뀔 동안 계속 똑같은 책을 쓰지는 않겠는가. 제페토가 진심으로 피노키오를 위했던 원전이나 만화영화에서도 그럴진대, 하물며 제페토가 실패작이라면서 피노키오를 마구 몰아붙이는 지금의 이야기에서는 더욱더 오리무중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슈는 굳이 설명하는 수고를 들이지 않고자 대중에게 친숙할 형태의 모습을 따왔다. Valkyrie의 행적을 아는 이들은 이게 뭐 하는 짓이냐며 기겁하겠지만, 슈에게도 생각이 있었다.
“중요치 않은 것을 설명하겠다고 시간을 들이면 중요한 것을 보지 않고 떠나버린다는 게야.”
슈는 이렇게 술회했다. 어찌 되었건 다시 구연의 이야기로 돌아오도록 하자.
“아부지, 학교 다녀오겠심더.”
피노키오가 책가방을 메고 무대 우측, 극중에서는 집 밖으로 퇴장하는 와중에도 제페토는 묵묵부답으로 또다시 나무를 깎을 뿐이었다. 조명은 움직이며 색이 변하였다. 틀림없이 하루가 끝나고 저녁이 되었다는 뜻이렷다. 모자의 깃털은 없어졌고, 팔은 그슬리고, 바지에는 패인 자국이 선명했다. 이것은 막 밖에서 피노키오의 모자 깃털이 뽑혀 나가고 팔이 불탈 뻔하고 각목 따위로 두들겨졌다는 은유였다. 그런 모습에도 제페토는 매정할 정도로 피노키오에게 최소한의 관심조차 주지 않았다. 빛이 다시 재빠르게 돌아갔고, 피노키오는 갔다가 묘사되는 상흔이 더 많아지는 것을 반복하더니 끝내는 숫제 왼쪽 종아리에 붕대를 감았으며 그쪽의 바지가 전부 검게 칠해진 채로 목발을 짚고 천천히 들어왔다. 극의 일부라지만 슈는 리허설 때보다 훨씬 강해진 시각적 표현에 내면의 자기 자신이 순간 튀어나와서 나의 카게히라 하며 부르려던 충동을 억누르고 그제야 큰 변화를 인지했다는 듯 ‘피노키오’를 째려보며 ‘제페토’로서 일갈했다.
“실패작.”
“응앗?”
순간 슈는 NG를 발생시킬 뻔했지만, 극을 위해 다시 원래의 대사를 말했다.
“실패작이 살아 움직이며 말을 하는 것으로도 모자라 나의 정원을 더럽히기까지 하다니!”
제페토는 이 말을 하며 악에 받치듯 오열했다.
“……미안합니더. 앞으로는 경거망동하지 않겠심다.”
그때 피노키오의 밑에서 백색의 폭죽이 터지더니 소품인 코가 순식간에 길어졌다.
“응아앗!”
“어디 거짓으로 나를 기만하려 하느냐!”
“다 지가 못나서 그런 거겠지예.”
섬광폭음.
“응아아아앗!?”
“…….”
거짓말은 피노키오의 잘못이라는 쪽이었던 것이다. 다만 그것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던 제페토는 매서운 시선으로 피노키오를 쏘아보았다.
“실패하고 저주받기까지 한 불경한 것이지만 나 역시 네놈을 돌봐야 할 족쇄에 매여 있으니, 답은 하나뿐이렷다!”
절규에 가까운 소리가 터져 나왔다.
‘……카게히라. 미안하다. 이런 일을 해보여야 한다는 것부터가 죄를 짓는 기분이고, 여러 장면을 다 선보일 수 있겠지만 이 대목은 차마 내 손으로 보여주지 못하겠구나.’
‘스승님, 내는 괘안타. 부담 갖지 마라.’
‘아무리 그래도 내 손으로 나의 카게히라를 감금하는 건,’
리허설 때 이런 고민으로 끙끙 앓고 있었던 슈에게 미카가 제시한 답은,
‘그럼 등화를 내려 보는 건 어떻겠나? 그렇게 하고 적당한 소리를 재생하면 하고 싶은 말은 충분히 전해질 거지라.’
그 말대로 슈는 잠시 조명을 내리라는 신호를 해 보였다. 팡하는 소리와 함께 조명이 급작스럽게 꺼졌다가 스폿 조명들이 주변에 섬광을 반짝이더니 다음으로는 천둥과 폭우 소리가 들리기 시작하였다.
――피노키오, 퇴장. 무대 우측.
“제페토는 끝내 자신의 ‘실패작’을 지하실에 가둬 놓고 문을 닫아버렸다. 미처 자물쇠를 채우지 않아 피노키오는 충분히 나올 수 있겠지만, 애석하게도 피노키오는 악의에 찬 제페토의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고 그 뒤로 영영 나오지 않았다. 어떤 일이 있기 전까지는 말이다.”
――제페토 겸 내레이터, 퇴장. 무대 우측.
막 내림.
Ishmael
슈는 다시 정신을 가다듬고 아직 불 꺼진 무대의 좌측으로 나와 내레이터 일을 속개했다.
“피노키오는 가둬진 곳에서 그 뒤로 계속 나오지 않았고, 제페토는 입에 풀칠이라도 하기 위해 목공과는 무관한 잡일에까지 손을 대기 시작했다. 그렇게 제페토의 집 지상층은 계속 비는 날이 반복되던 어느 날.”
급작스럽게 불이 켜진 곳에는 새까만 재가 뿌려져 있었다. 그 가운데 나무 밑동에 도끼가 찍혀 있는 것을 제외하면 완전한 잿더미였다. 무대 우측에서 제페토가 헐레벌떡 뛰어오더니 그 광경을 보고 식겁했다.
“이…… 버러지만도 못한 놈들!”
그 순간 예의 천사가 이제는 숫제 사신이라도 불러도 될 만한 차림으로 나타났다. 검은 로브를 입고, 날은 세워지지 않았지만 여전히 반짝여서 관객에게 위압감을 주기에는 충분했던 대낫을 들고 엄숙한 표정으로 걸어들어왔다. 발소리를 듣는 순간 기다렸다는 듯 제페토가 퀭한 눈으로 도끼를 집어 들고 그 자에게 다가갔다.
“네놈이냐!”
이내 도끼가 휘둘러졌지만―물론 관객들이 모르는 사실은 이렇게 위험천만해 보이지만 애초에 슈의 조준점은 왼쪽 어깨보다도 왼쪽이었다는 것이다―사신, 아니 대행자로 보이는 자는 가볍게 그 도끼를 잡아챘다.
“제페토.”
“…….”
어색한 첫 마디가 이어진 뒤 간신히 제페토가 도끼를 거두고 말할 정도로 정신을 차렸다.
“무슨 일로 왔느냐. 나의 터전을 난도질하고 그 결과를 직접 내려다보기 위해 현현한 것이냐? 아니면 나의 사실상의 죽음을 조소하기 위해 방관자로서 온 것이냐?”
“원래대로라면 그랬겠지요. 제가 친히 신벌을 내려야 할 정도로 당신은 책무는 고사하고 인간 된 도리조차 지키려 들지 않았으니까요.”
다시 이어진 침묵 속에 대행자가 이 상황에 맞는 것이라고는 차마 생각할 수 없었던 인자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마치 제페토의 말마따나 그를 조소하는 것과도 같이.
“하지만 이미 인세에서 저의 몫까지 벌을 친히 내려주신 것 같군요.”
“원하는 게 뭐냐.”
“저는 다만 전령으로서 내려왔을 뿐입니다. 피노키오와 당신 사이에 영적 연결고리 같은 것이 있는 것도 아니거니와, 당신이 구태여 그 행방을 찾으려 할 위인도 아니라 판단되니까요.”
제페토는 여전히 입을 앙다물고 쏘아보았다.
“피노키오는, 제도 제 아비의 살림에 보탬이 되겠다며 원양으로 돈을 벌러 떠났답니다.”
“그래서?”
흥 하고 코웃음 치며 제페토가 받았다.
“그곳에서 피노키오가 탄 조각배가 백경 ‘몬스트로’에게 잡아먹혔고요.”
“뭐?”
그제서야 제페토가 힘없이 도끼를 떨구었다.
“그렇습니다. 당신이 그를 내버리고 가학하며 세상 모두에게서 매몰차게 짓밟히는 것을 방관하는 동안 실패작이라 불렸음에도 불구하고 가엾은 그 아이는 오직 당신을 위하여 그 모든 것을 받아들였습니다. 당신이 실패작이라고 부르자 그는 ‘실패작’이 되지 않기 위해 자기 자신을 깎아 갔으며, 그 모든 세상의 비웃음과 가학도 견디며 배움의 길을 추구했으며, 당신이 어떤 이유도 없이 그를 가두었을 때도 무슨 이유로 그런 일을 당했는지 부당한 일이라는 자각은 전혀 없는 채로 끙끙 앓고 있었고요. 그러고 나서 고민 끝에 여태까지 그래 왔듯 자신을 깎아서 당신을 돕기로 했는데, 당신은 그동안 무얼 했습니까?”
그 전의 제페토였으면 바로 독설을 퍼부었겠지만 이미 충격적인 말을 연속적으로 들은 지금의 그는 제페토로서 가졌던 옹고집은 꺾인 지 오래였으며 갑작스러운 정보와 비난의 쇄도에 무너지기 직전이었다.
“당신 같은 인간에게는 이해가 가지 않을 수 있으니 조금 더 쉬운 말로 풀어 보죠. 당신의 피조물 피노키오가 뗏목까지 만들어 먼바다에서 고기를 잡다가 백경 몬스트로에 애처롭게 잡아먹힐 동안 당신은 무엇을 했는지 친히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이것이 나의 심판이다―라고 말할 셈인 양 대행자는 고개를 돌려버렸고 이내 제페토를 향한 스팟 조명을 향한 모든 조명이 꺼져버렸다.
“피노키오가…… 그 모든 일에도 불구하고…… 나를?”
슈는 유독 이 대사를 연기할 때는 아무런 연기 지침도 세우지 않았다. ‘나의 카게히라라는 말을 피노키오로 바꾸면 충분하다’나. 그만큼 제페토는, 아니 이츠키 슈는 자기 자신이 카게히라 미카에게 가졌던 모든 감정을, 특히 회한을 담아서 이 한 마디를 남겼다. 청중, 막후 관계자, 미카, 슈 본인 가릴 것 없이 이 말을 듣고 목소리가 먹먹해지고 가슴이 아려 왔다. 끝내 슈는 도끼를 다시 치켜들었고 때맞추어 파도 소리가 들리며 주황색의 자연광 느낌의 빛이 무대 전체에 은은하게 퍼졌다.
“오라, 백경이여. 나의 마음에 남은 마지막 쐐기못을 뽑아 가슴에서 공허의 검은 피가 흘러나와 하여금 제대로 살길을 앗아간 자여. 나 이스마엘이 고하노니 부름에 응하거라. 나까지 삼켜가든지, 아니면 차라리 나에게 책임을 물어 공멸하도록 할지어다!”
모든 조명이 일시에 소등되었다. 처음에는 철골이 삐거덕거리는 소리가 나더니 증기선의 경적 같은 소리와 각종 판타지적인 괴수의 소리가 뒤섞여 불쾌하고도 기괴한 소리를 내었다. 슈는 이 소리를 마지막까지 조율하며 이해할 수 없고 두려워할 수밖에 없는 느낌을 주고 있는지 확인할 것을 계속 주문하였다. 괴물 「몬스트로」. 이해할 수도 없고 그 자신에게 사유가 있는지도 의문이지만 우연찮게 표류한 피노키오를 집어삼킴으로 하여금 이 극의 제페토에게는 단죄자로 작용하는 자. 결과는 납득할 수 있지만, 표상은 이해할 수 없어 더욱더 기이하고 무섭다.
――제페토, 퇴장. 무대 좌측.
Icarus
급작스럽게 무대 전체에 다시 백광이 켜졌다. 피노키오가 지난 상처는 어느새 싹 지워진 채로 뗏목 위에서 낚싯대를 드리우고 있었다. 제페토는 엎어진 채로 눈을 감고 있다가 힘겹게 눈을 뜨고 일어났다.
“아부지! 괘안심까!”
피노키오가 제페토를 마구 흔들어 깨웠다.
“여기가…… 몬스트로의 안…….”
제페토는 게슴츠레 눈을 뜨고 뗏목을 잡고 일어나더니 그 위에 걸터앉았다.
“나도, 무모했구나. 그 안에 생태계 하나가 들어앉아 있는 존재에게 감히 싸움을 걸다니.”
“무신 말씀을 하시는 건진 모르겠지마는, 보이소! 대어를 이따시만치 잡았으니 돌아가면 집 정도는 가벼이 살 수 있을 겁니더!”
피노키오의 말을 뒷받침하듯―물론 소품용으로 미리 쌓아 놓은 것이었지만―뗏목 위에는 물고기가 잔뜩 쌓여 있었다. 원래대로라면 제페토는 그런 말도 안 되는 논리를 펼치고 있는 피노키오에게 일갈을 해야 했지만, 그때의 제페토는 그저 와락 피노키오를 끌어안는 것밖에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미안하다, 피노키오. 미안하다.”
“무신 소리를 하는 건지 모르겠심더.”
“이게 다 내가 못난 탓이다. 지금까지 너를 내버리고, 돌보지 않고, 끝내는 가두고……”
“아부지.”
“이것을 어떻게 하면 되돌릴 수 있을지.”
“아부지!”
피노키오가 왈칵 끌어안은 제페토를 밀쳐서 떼어놓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일갈했다.
“
이럴 때가 아이라! 일단 이걸 끌고 어여 나갈지부터 생각해봐야 할 거 아임미꺼! 몬스트로건 무어건 일단 여기는 나가고 봐야지예!”
“그래, 그래, 이럴 때가 아니지, 하지만 내가 들고 온 것이라고는 나의 모든 것이 타버리고 남은 이 도끼뿐이구나.”
제페토는 여전히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예가 고래 뱃속이라 했지예?”
“……그렇다. 탈출 불가능한 감옥.”
“탈출 불가능아고 머꼬! 고래도 숨 쉬는 동물 아임미까!”
“그렇지.”
“그렇다면……”
갑자기 피노키오가 숙연한 표정으로 가져왔던 등불을 집었다.
“……지는, 예까지인 것 같심더.”
“피노키오! 무슨 생각이냐!”
제페토가 찢어지는 목소리로 피노키오의 이름을 부르짖었다.
“나무나 기름이 타는 연기를 들이마시게 하면 저놈이 기침을 하겠지예. 그라믄 그 속에 있는 우리도 튀어 나갈 터. 여기 지금 기름이래 봐야 타지도 않는 생선 기름에, 나무라고는 지뿐이지예?”
“다른 방법이 있을 것이다!”
“다른 방법이 있을 게지만 이만큼 빠르지는 않을 것 같심더. 부디 아부지는 내 몫까지 살아 주이소.”
“안 돼!”
제페토가 튀어 나간 순간 막이 암전되었다. 유리가 깨지는 소리와 나무 장작이 불타는 소리가 스피커를 통해 들렸다. 다음 찰나 동안 불이 켜지더니 피노키오는 불꽃 효과에 둘러싸인 채로 미소를 지으며 제페토에게 손을 흔들어 보였고, 제페토는 균형을 잃고 휘청이면서 절규하는 표정을 지었다. 다시 막이 암전되었고, 예의 증기선 소리와 철골 소리가 섞인 괴수의 소리가 다시 무대를 찢어발기기 시작하였다.
Life
“며칠 후. 날짜 미상. 시각 미상. 장소 미상.”
슈는 미리 제페토로서 바닥에 엎어진 채로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매우 언오소독스 하게 내레이션을 시작하였다. 막이 올라가고 제페토가 몬스트로를 부르짖을 때처럼 자연광 풍의 무대 조명이 은은하게 들어오기 시작했다. 제페토는 게슴츠레 정신을 차리고 눈을 비비며 일어났다.
“피노키오야, 피노키오야! 피노키오…….”
제페토가 다리를 절뚝이며 몇 보 앞으로 가려다 엎어졌다. 잠시 뒤 막후의 누군가가 그물에 잡힌 물고기들과 도끼를 밀어 던져 제페토 옆에 놓아 주니 파도 소리가 잔잔하게 퍼졌다. 쓰러진 제페토의 앞에 무대 좌측에서 예의 천사이자 심판자가 이번에는 맨 처음과 같은 천사의 예복을 하고 제페토의 앞에 자박자박 걸어 나왔다.
“제페토.”
그 말에 쓰러졌던 제페토가 다시 도끼를 거꾸로 부여잡고 지팡이처럼 짚고 일어서려 했다. 도끼를 짚은 오른팔과 그 도끼가 후들거리매 이때의 제페토는 편집증적인 포악한 이의 모습도 피노키오를 보며 밑도끝도 없이 사죄하던 그 모습도 없이 그저 모든 기댈 곳을 잃고 자기 자신도 온전치 않게 남아버린 한 늙은이였을 뿐이었다.
“부탁입니다. 내 마지막 부탁입니다. 나의 목숨과 맞바꾸어 피노키오를 구명해 주십시오.”
침묵.
“그 아이는 내 슬하에서 나 때문에 불행만을 지고 살아오다 자기 자신을 불사르기에 이르렀습니다. 저에게 그 아이의 목숨마저 빼앗을 권리는 없습니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고 하였으니, 정녕 저를 벌하러 오셨다면 제 목숨을 피노키오에게 주십시오!”
또다시 약간의 침묵이 있었던 뒤 드디어 천사가 말문을 열었다.
“수호자로서 저는 그 아이에게 생을 주고 싶다면, 그 아이가 원하는 것을 들어줄 의무가 있습니다.”
제페토는 그저 양손으로 지팡이를 부여잡고 간신히 눈앞의 존재 앞에서 자신을 지탱하고 있었을 뿐이었다.
“당신은 정녕 그 아이를 위해 소원을 빌고 있나요?”
이 말에 제페토는 완전히 버틸 의지를 잃은 마냥 도끼를 떨구고 앞으로 엎어졌다.
“피노키오의 살신성인과 당신의 각성을 보아, 계약을 이행함과 동시에 그 아이의 마지막 소원을 들어주도록 하겠습니다.”
천사가 뒤로 돌아서 퇴장하려다 슈에게 고개를 돌리며 마지막 마디를 남겼다.
“이것이 제가 들어드릴 수 있는 마지막 소원입니다. 제페토, 피노키오, 당신들 모두 세상만사 쓰라린 고행도 거치게 될 것이고, 언젠가는 홀로서기를 배워야 합니다. 그때 저는 신의 뜻을 잃은 한낱 인간이 되어 있을 테니까요. 그럼, 모쪼록 여러분에게 신의 가호가 깃들기를.”
암전. 전원, 퇴장. 극 종료.
Epilogue
남은 부분은 연기하는 일 없이 슈가 자기 자신으로서 나와 구연을 이었다. 옆에서는 미카가 관객에게 손을 흔들어 보였다.
“쓰러졌던 제페토는 자기 집에서 정신을 차렸다. 반가움에 피노키오를 끌어안았지만 피노키오는 그간 무슨 일이 있었다고 말도 하지 않고 그저 갑자기 와락 끌어안는 제페토를 다독이며 제는 괜찮다고 해줄 뿐. 피노키오에게는 나무 사이의 이음 못도, 나무 인형에게는 으레 있을 인형 스트링도, 지난 상흔들도 없어져 있었다.”
이어 미카가 호흡을 가다듬고 이어서 가로되,
“제페토 할아부지에게 지금까지의 일들이 사실이었는지, 앞으로 일이 사실인지 사후세계의 꿈인지 따위는 중요하지 않았심더. 중요한 것은 이제야말로 피노키오와 함께 후회 없고 사랑으로 가득한 삶을 살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지예.”
끝으로 슈가 클로징 멘트를 띄웠다.
“우리 Valkyrie의 첫 동화 구연이 어떠하였나? 원래 이야기에서 엇나간 부분도 꽤 있을 것이고, 많이 언오소독스한 측면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네가 이미 알고 있는 이야기를 구연하기에는 차라리 원 이야기를 비틀어 역으로 모두가 비교를 위해서 「피노키오」를 하여금 되새기게 하는 것이 나았으리라 생각했다.”
“감사합니더!”
박수갈채와 미카의 인사가 서로에게 화답해주고 있었다.
“스승님, 내는 오늘 어땠나?”
저녁놀이 참으로 아름다울 때, 구연을 마친 Valkyrie의 이들이 식사를 위해 내려가고 있을 적이었다. 미카가 슈에게 뜬금없어 보이는 질문을 하였다.
“더는 나를 스승님이라 부르지 않아도 된다는 게다.”
슈는 왠지 그답지 않게 선문답 같이 받았다.
“뭐꼬? 스승님을 스승님이라 부르지 않으마 무어라 부르나?”
“나의 카게히라여, 정녕 그것이 네 대답이라는 것이냐?”
“하모!”
카게히라 미카가 그 어느 때보다 밝게 웃어 보이며 말했다.
“그렇다면, 오늘도 역사를 쓸 준비를 하러 가 보도록 할까.”
이츠키 슈 역시 자신감 넘치는 미소를 지으며 앞으로 행진을 이어 갔다.
아마 대부분의 여러분에게는, 《앙상블 스타즈!》 2차 창작이라고 해 봐야 쓰다 만 것 한 편뿐인 저의 이름이 익숙지 않으실 수도 있겠죠. 처음 뵙겠습니다. 프로듀서 명 “푸른 장미”, 아를카미유입니다!
이실직고하자면 저는 Valkyrie의 담당은 아닙니다. (fine의 담당이라고 더 정확히 알고 계시는 분도 계실 것입니다) 그리고 처음 글을 쓰게 된 동기는 약간 여기서는 말하기 힘든 부차적인 이유가 있습니다만, 차차 이츠키 슈와 카게히라 미카 사이의 관계 그 자체에 흥미를 느끼고 접근하게 되었습니다. 슈미카의 관계는 굉장히 흥미로운 인물들 사이에서 인상적으로 전개됩니다. 「추억*마리오네트의 실끝」으로 대표되는 구 Valkyrie 시절에 슈는 다소 폭압적인 완벽주의자, 미카는 그런 슈의 총애를 받지 못할까 봐 전전긍긍하는 이입니다. 다소 큰 사건의 폭발 이후 슈는 떠나보내는 것과 자신에게 남는 자를 총애하는 것을 배우게 되고, 미카는 의존에서 계승, 나아가 파트너의 관계로 발전해 나가게 됩니다. 물론 부외자의 관점이라 다소 거칠게 요약되었을 수도 있고 부정확할 수도 있겠습니다만 제가 받은 인상은 이러하였고, 그런 이미지에 기반을 두어서 약간의 초기 아이디어를 얻었습니다. 재미있게 읽어 주셨다면 다행입니다.
《앙스타!》 외적으로 보자면 이 글은 저에게는 일종의 「파죽지세 프로젝트」 (※ 사실은 그런 이름 안 붙였습니다) 같은 느낌의 일련의 글 중 하나입니다. 그간 여러 일이 일어나면서 글을 쓸 의욕을 점점 잃어 가면서 일상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판국에서 게임만 계속 붙들고 있었고, 완전히 실의에 빠진 끝에 인터넷을 쓸 수 없는 5월 한 달의 기간이 때마침 다가왔습니다. 새비지 월드 시나리오 구상 등 여러 일이 많았을진대 이 글도 거기서 예외가 아니라고 판단했습니다. 물론 기간 자체는 7~8월까지라 앞서 말한 것과 달리 별로 시급한 일은 아니었습니다만, 이번 기회에도 쓰지 않으면 i) 이 기간에 매우 무료할 것 같았으며, ii) 이 기간마저 놓치면 평생 펜이 꺾인 채 있을 것 같았습니다. 안 될 일이죠. 앞으로 풀고 싶은 이야기가 한두 개가 아닌데.
이 글의 줄거리는 아무래도 몇 달에 걸쳐서 초안을 잡은 글인 만큼 몇 차례 변화했고 모티브도 상당히 여러 곳에서 따왔습니다. 처음에는 단순히 디즈니 애니메이션 《피노키오》를 뒤틀어서 마리네에서 슈퍼 달링 모드로 돌입할 때까지의 과정에 대입해 보자고 생각했습니다. 그 상태에서 스토리 윤곽과 서장만 잡은 채로 석 달 정도가 흘렀습니다. 하지만 이 이야기를 그대로 쓰기에는 여러 가지로 곤란한 부분이 있었는지라 원전에서 지미니 등의 상당히 많은 등장인물이 빠졌습니다. 오직 이츠키 제페토와 카게히라 피노키오, 그리고 덤으로 요정 역할의 신. 굳이 따지면 백경으로 변경된 ‘몬스트로’ 정도까지 총 넷. 여기에 《인셉션》, 《모비 딕》, 《콜 오브 듀티: 블랙 옵스 III》 등의 작품의 오마주를 버무려서 볶음 라면처럼 만든 것이 이 이야기입니다. 덤으로 집중 기간 중에 《우상의 눈물》 (전상국 단편집 쪽) 등도 읽었는지라 그 영향도 아예 없다고 할 수는 없겠네요. 유감스럽게도 전상국 씨의 글이 제 글 실력을 배양하는 데 큰일을 하지는 못했지만요.
긴 썰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를카미유였습니다. 혹여 《앙상블 스타즈!》 이외의 다른 장르에도 관심이 있으시면 포스타입 (https://precious-cetera.postype.com)에 들러서 다른 연성들도 읽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초고 완성: 2019. 5. 15.
퇴고 완성: 2019. 9. 30.
―― 아를카미유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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