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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vel

글 / 에리카 / 재상연의 인형 공방

 * 언젠가, 어딘가의 AU입니다.

 

 

 미카 칭, 미안하지만 오늘 들어온 인형 좀 작업실로 옮겨주겠어? 마을 상점에 주문한 게 들어왔대서 받으러 다녀올게!

 

 잠깐 졸았던 모양이다. 카게히라 미카는 퍼뜩 선잠에서 깨어, 대답을 하려 했으나 눈에 보이는 것이라고는 문에서 경쾌하게 짤랑이는 풍경뿐이었다. 아, 가버렸다. 뒤늦게 통유리창으로 밖을 내다 보니 짧게 자른 금색 머리칼이 흔들리며 멀어지는 게 보였다. 나즈나 형, 오늘도 바쁜가 보네. 카게히라가 일하는 앤티크 공방은 구체 관절 인형의 수리와 제작도 겸하고 있는 드문 곳이었다. 방금 문을 열고 뛰쳐나간 사람이 니토 나즈나, 이 가게의 주인이고. 카게히라는 길게 한숨을 내쉬며 자리에서 일어나 기지개를 켰다. 핸드드립 커피를 잔에 따른 뒤 각설탕을 넣고, 가게 문 아래쪽에 난 네모난 구멍 - 원래는 우유나 신문을 두고 가는 곳이었으나 편하게 수리 요청을 받기 위해 아예 바구니가 드나들 정도로 뚫은 - 앞을 살피니 정말로 인형의 기다란 가방이 놓여있다. 여느 인형 가방보다 훨 웃도는 사이즈에, 살짝 들어보니 역시 예상대로 무겁기에 어쩐지 심장이 조금 빨리 뛰었다. 본체는 일 미터쯤 되는 걸까, 열심히 가늠하며 등으로 벽에 있는 스위치를 켜자 작업실이 한순간에 환해진다. 가방을 바닥에 내려놓은 카게히라는 하얀 면장갑을 끼고 천천히 가방의 잠금쇠를 풀었다.

 

 

 "…와아…."

 

 

 다양한 종류의 고급스러운 인형들을 보아온 카게히라로서도 탄성이 절로 나올 만큼 아름다운 구체 관절 인형이, 두 눈을 가지런히 감은 채 잠들어 있다. 등에 태엽을 꽂고 시계 방향으로 두 번 반을 감은 뒤 의자에 앉혀두자, 서서히 눈을 뜨는 모양새란 카메라라도 가져와서 기록하고 싶은 순간이었다고 카게히라는 생각했다. 뭔가의 장치라도 되어 있는 것이겠지. 결 좋은 연분홍빛 머리칼에, 눈을 뜨니 보이는 보석 안구는 선명한 보라색을 띠고 있다. 예쁘다. 다소 날카로워보이는 얼굴이지만 어딘지 모르게 사람의 향수를 불러 일으키는 구석이 있었다.

 

 

 "아, 내도 참, 이럴 때가 아이제…."

 

 

 눈앞의 인형에 한참 몰두해 착용하고 있는 검은색의 정장도, 구두도 넋을 놓고 살펴보던 카게히라가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인형과 함께 보내온 가방을 살펴봤지만, 어디에도 어떤 부분이 고장이라든가 어느 부품의 도색이 벗겨졌다는 말은 적혀 있지 않았다. '잘 부탁드립니다.' 라고 적힌 자그만 쪽지 하나만이 나왔을 뿐. 행여 놓친 게 있었나 싶은 마음에 다시 인형을 찬찬히 관찰했으나 눈에 띄는 하자는 없었다. 니토가 돌아오거든 제대로 물어보기로 하고, 만들어두었던 인형 옷들 가운데 어울릴 만한 게 있을지 뒤적이는 사이에 해가 깜박 저물었다. 크기가 여간 크지 않아 조금 애를 먹었으나, 입힐 만한 옷으로는 검은 베이스에 금색과 붉은색으로 인상을 준 코트 정도 되는 길이의 자켓을 골라두었다.

 

 

 "아, 갖다 놓았구나. 그 인형 말이야, 군수용으로 만들어진 거래."

 

 

 어느새 쌀쌀해진 밤 공기를 묻히고 들어온 니토가 말했다. 커피를 마셨는데도 여전히 밀려오는 나른함에 반쯤 감겨가던 카게히라의 눈이 도로 동그랗게 뜨였다. 군수용? 이렇게 섬세하고 예쁜 인형이? 아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는데도 마음을 읽은 듯 니토가 이야기를 이어가기 시작했다.

 

 

 "나도 처음에는 안 믿겼지 뭐야. 게다가 의뢰를 맡긴 사람은 익명이고…."

 "와 맡긴 건지는 들었나? 아까 가방 안을 살펴봤는데, 아무것도 없었데이."

 "아무것도 없었다고?"

 "응. 여, '잘 부탁 드립니다' 라꼬 적힌 쪽지가 다였다 안카나."

 "…이상하네…. 분명 가방 안에 자세한 걸 적어놨다고 했는데. 미카 칭 글씨 제대로 읽은 거 맞아?"

 "내 제대로 읽었데이?!"

 

 

 아하하, 장난이야, 장난. 손사래를 치며 웃던 니토가 이내 심각한 얼굴로 인형을 이리저리 살피다가, 문득 한숨을 내쉬었다.

 

 

 "무슨 일이가?"

 "…으응, 아니. 아무래도 이 인형, 버려진 걸까 싶어서. 아니라고 믿고 싶지만 정황이 그렇네. 의뢰인도 이 마을 사람이 아니었고, 곧장 기차를 타고 멀리 간다고 들었거든."

 "……응아…. 인형 씨 버려진 기가?"

 "누가 버려졌다는 게야, 무엄한 것."

 "응아?! 나즈나 형 복화술도 하나?"

 "나 아니라교! …잠깐?"

 

 

 순간 공방 안에는 기묘한 적막이 감돌았다. 밤의 바람보다도 서늘하게 가라앉았던 그걸 깨트린 것은,

 

 

 "…아아, 이래서 인간들이란…."

 

 

 틀림없는 인형의 목소리였다.

 

 

 

*

 

 

 

 "응아, 어쩌제. 우째 말해야 인형 씨가 상처를 덜 받겠나? 나즈나 형."

 "글쎄, 어떻게 말해도 달라지는 건 없을 것 같은데…. 일단 경과가 심각하니까 오래, 좀 오래 있어야 한다고 말할까?"

 "인형 씨라믄 자기 몸 성한 거 진작에 알고 있었을 기다…."

 

 

 카게히라는 어쩐지 제가 다 풀이 죽은 눈치로 귀여운 사이즈의 찻잔을 들고 방으로 향했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사람이 들어온 줄도 모르고 방 안을 둘러보는 인형이 눈에 들어왔다.

 

 

 "저, 인형 씨."

 "…이츠키 슈."

 "응앗?"

 "두 번 말하게 하지 말거라. 내 이름은 이츠키 슈라는 게야, 인형 같은 게 아니라."

 "으응… 그라모 뭐라고 불러주믄 되나?"

 "이츠키. 다들 그렇게 불렀으니까."

 "…슈 씨, 어데 아픈 데는 없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인형 - 이츠키 - 의 매서운 시선이 날아와 꽂혔다. 손을 들어 소매에 앉은 먼지를 털어 내고는 도로 카게히라를 바라보는 눈에, 의구심이 가득했다. 그가 건네는 찻잔을 들고도 그저 바라보기만 할 뿐 입에는 대지 않았다.

 

 

 "이상하군. 너, 할 말이 있는 눈치라는 거다."

 "아, 내는 카게히라 미카라고 한데이. 그… 할 말이 없는 건 아인데…."

 "그럼 말하도록 해."

 "…아무래도 슈 씨가, 버려진 것 같데이."

 "또 그 이야기인가?"

 

 

 눈썹이 불만스럽게 치솟았다가 내려온다. 꼭 정말… 사람처럼. 저도 모르게 입을 벌리고 있었던지 이츠키의 손이 불쑥 카게히라의 턱에 와 닿았다.

 

 

 "말하는 인형을 처음 보는 건가, 버려진 인형을 처음 보는 건가. 어느 쪽이든 답답하기는 매한가지다만."

 "응아… 미, 미안타. 아무래도 말하는 인형은 드물어가. 근데, 그, 슈 씨는…."

 "무엇이지."

 "버려졌는데, 슬프지 않은 기가?"

 "하?"

 

 

 눈이 내리는 걸 두고도 날씨가 맑다고 말하는 사람을 보듯이, 이츠키가 카게히라를 건너다 보았다. 당연한 것은 구태여 묻지 않아도 된다는 듯. 잠깐 무언가를 생각하는지 고개를 숙이고 있던 인형은 이내 찻잔의 손잡이를 매만지며 도금이 벗겨졌군, 낮게 한 마디를 남겼다.

 

 

 "슬프지… 않느냐고 묻는다면, 사유해볼 필요가 있겠지.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슬픈 일이 아니야. 오히려 쓸모 없어지는 게 훨씬 더 비극적인 결말이니까."

 "쓸모…?"

 "그래. 적어도 나는 네 녀석이 없었을 적에 내 쓸모를 다 했으니, 네가 생각하는 것만큼 비참하지는 않다는 거다. 내 의견은 이쯤 하면 되었겠지, 그래서 나를 소각할 텐가? 부품은 제법 비싼 걸 썼다만, 차라리 분해라도 하는 게."

 "무, 무슨 소리를 하는 기가! 내는… 내랑 나즈나 형은 그래 잔인한 짓은 안 한데이. 슈 씨를 고쳐서…"

 

 

 고쳐서, 그 다음 말은 좀처럼 나오지 못했다. 고쳐서 뭘 하겠다는 거지? 그 전에, 큰 손상도 찾아볼 수 없는 데다 고가에 고고하기까지 한 이 인형을 행여 잘못 손댔다가는. 하지만 여타의 것들을 생각할 틈이 없었다. 카게히라는 극구 제 생각을 밀어 붙였다.

 

 

 "나를 고쳐서?"

 "…그… 고쳐서… 아무튼, 슈 씨를 소각로에 보내는 일은 없게 할 기다! 분해하는 일도 수술이 필요한 기 아이믄 안 할 기고!"

 "왜 그렇게까지 하냐는 게야. 어차피 나는 버려진 인형인 것을, 인력이 아깝지 않겠나."

 "그야…"

 

 

 아름다우니까. 태어나서 이토록 섬세하고 정교한 데다 말까지 하는 인형과 조우한 건 처음이니까. 카게히라는 꾸욱, 하고 저도 모르게 주먹을 말아 쥐었다. 인력 같은 건 아깝지 않다고 생각했건만, 눈앞의 청개구리 같은 인형 때문에라도 없던 오기가 샘솟는 게 느껴졌다. 분명 찬사였을 그 말에도 이렇다 할 표정의 변화가 없던 이츠키가 불쑥 찻잔을 카게히라에게 내밀었다.

 

 

 "…뭐, 좋을 대로 하거라. 단, 나는 네가 다뤄온 장난감 인형들과는 본질적으로 다른 존재니까 조심하는 게 좋을 게야."

 "응, 알겠데이!"

 "칫, 대답은 잘 하는구나. 그럴 시간에 찻잔의 손잡이에나 신경을 쓰라는 거다. 여기도 보거라, 이가 나갔질 않나."

 "응아, 이거는, 그러니까…"

 "됐어. 이 나와 지내려거든 이 정도는 감수해야 한다는 말이다."

 

 

 이쪽을 바라보는 시선이 조금은 누그러졌을까. 그렇게 생각하며 카게히라는 날이 밝거든 찻잔을 사러 갈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무에 그리 즐거운지 어느 틈엔가 콧노래까지 흥얼거리기 시작한 저를 내도록 이츠키가 지켜보고 있었음은, 아마 소년은 결코 알지 못했을 테다.

 

 그 다음날부터 카게히라의 일상을 지켜보는 이가 하나 늘었다. 니토가 아침마다 인형 옷에 사용할 원단을 구하러 마을로 향하면, 카게히라는 종일 가게를 지키는 패턴이었으나 이제 옆에서 따라붙는 시선이 생긴 셈이다. 날이 밝고 제대로 살펴 보았음에도 이렇다 할 손상은 없었던지라, 수리라고 할 만한 걸 받기에도 애매한 입장이 된 이츠키를 카게히라는 부득불 출근길에 데리고 나왔다. 이른 손님이 몇 사람 다녀간 뒤 숨을 돌리려고 자리에 앉기 무섭게, 이츠키가 한참동안 닫고 있던 입을 열었다.

 

 

 "인간이란 전부 너처럼 고집불통인 게야?"

 "…응아, 내 정도면 고집이 센 편도 아이다…?"

 "칫, 다들 그렇게 말하더군."

 "슈 씨는 다른 사람들도 많이 만나봤제?"

 

 

 별안간 눈을 빛내며 사람에 관한 걸 묻는다. 그러니까, 사람이 인형에게. 기이한 현상에 잠깐 말을 고르는가 싶던 이츠키는 고민 끝에 말을 꺼내들었다. …사람이지만 사람이 아닌 이들을 많이 봐왔지. 그것으로는 답이 되지 못한 듯 의아한 눈으로 바라보기에 무심코 한숨을 내쉬었던가.

 

 

 "…내, 잘 모르겠다. 사람인데 사람이 아이라니 무슨 뜻이가?"

 "내가 걸어온 길만으로도 답이 나오지 않느냐는 게야. 본래 기계란 도덕적으로 중립을 지키는 게 맞지. 그런데도 살상 따위의 비윤리적인 프로그램을 심어 놓다니, 지금도 만물의 영장이라고 자칭할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는 건가."

 "살상? 슈 씨도 전쟁에 나갔던 기가?"

 "아니, 나는…"

 "내는, 전쟁 같은 건 본 적도 없어가 잘 모르겠지만… 그래도 슬픈 일일 거라고 생각한데이. 사람들이 억수로 많이 죽어 나가고, 다치는 기제. 내도 부모님이나 동생을 잃었으니까…."

 "네가 말인가?"

 "…응."

 

 

 신중하게 말을 골라서, 제 눈에 담은 것보다도 더한 참상을 보았을지 모르는 인형의 앞에 느리게 풀어놓는다. 그런 모양새를 지켜보던 이츠키가 문득 손을 들어, 카게히라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기에 상황을 파악했을 때는 둘 모두가 놀라고 말았다.

 

 

 "응아앗, 슈 씨 이런 기능도 있었구마. 그, 고맙데이?"

 "…나도 몰랐다는 거다."

 "응?"

 "……이런 게 가능한 줄은 몰랐어. 한데, 꼭 아주 오래 전부터 해왔던 양 익숙하군."

 "슈 씨가 어쩌면 따뜻한 존재였을지도 모르는 거 아이가?"

 "…아까 네 녀석이 끼어드는 바람에 말할 기회를 놓쳤지만, 나는 전시에 쓰인 적이 없어. 나를 만든 사람과 헤어진 뒤로는 창고에서만 줄곧 있었지. 어느 정도의 매뉴얼은 프로그래밍되어 있었으니 훈련을 받을 필요가 없다고는 했지만, 옆에 있던 안드로이드들이 속속 떠나는 걸 보고만 있었단 게야. 어쩌면 네 말대로… 싸우기 위해 만들어진 게 아니었을 수도 있지."

 "…."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가 따스한 존재가 되는 건 아니라는 거다. 나는… 소중한 걸 지키지 못했으니까."

 

 

 다급하게 손을 내린 뒤에도 어딘지 모르게 복잡한 표정을 하고 있다. 대화 역시도 끊겨버린 것은 물론이었다. 눈치를 보던 카게히라가 먹고 싶은 것이라도 있느냐고 묻자, 크로와상이라고 답하기에 근처 빵집에 다녀왔을 때는 어느덧 점심을 넘긴 뒤였다. 이츠키는 접시에 담아둔 빵을 뚫어져라 바라만 볼 뿐 손댈 생각도 않았고, 그러는 새 서너 명인가 되는 손님이 다녀갔다. 대체로 단골밖에 드나들지 않는 작은 가게인지라 내부의 변화 - 못 보던 인형에 관한 - 를 알아차리지 못하는 사람은 없었지만, 말도 않고 일말의 움직임도 없이 붙박인 듯 앉아있는 탓에 오히려 애를 먹은 것은 카게히라였다.

 

 저 인형, 가게 문 앞에라도 세워두면 좋을 텐데 - 오후에 보닛을 사러 온 소녀의 귀띔에 카게히라는 무언가를 구상하는 눈치로 가게 문이 닫히기를 기다렸다가, 이내 은은한 종 소리만이 퍼져나갈 즈음에 사락 입꼬리를 말아올렸다.

 

 

 "있제, 있제. 슈 씨."

 "…무엇이지."

 "그으, 화난 거 있음 풀어도…? 내, 좋은 게 생각 났으니까."

 

 

 뜸을 들일 시간에 말하라는 듯한 눈빛이 날아와 꽂혔다. 카게히라는 카운터에 놓인 사탕 그릇에서 체리맛 사탕을 하나 꺼내어 포장을 만지작대며 말을 꺼냈다.

 

 

 "슈 씨가 여서 일해보는 건 어떻겠나? 아까 나루 쨩이… 아, 나루 쨩은 내 친구다. 금발 머리에 슈 씨처럼 보라색 눈을 한 억수로 예쁜 아데이. 아무튼, 나루 쨩이 슈 씨를 직원으로 삼으믄 어떻겠냐구 해가…."

 "뭐, 나로서도 그 편이 가만히 있는 것보다는 낫겠지."

 "진짜 해주는 기제?! 조건이 하나 있기는 한데, 별로 어려운 건 아이다. 내한테… 슈 씨의 이야기를 들려도. 면접 같은 거니까, 그런 과정이 있으면 나즈나 형도 찬성할 기고…?"

 "…기각."

 "에?!"

 

 

 태어나서, 아니, 만들어진 이래 저토록 감정의 파장이 큰 인간은 처음이라고, 카게히라가 손에 쥐고 있는 사탕 껍질을 바라보며 이츠키는 생각했다. 왜 저 아이에게 별안간 손이 먼저 뻗어나갔을까, 분명 여태껏 그런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는데. 톱니바퀴로 된 두뇌가 빠르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아마 카게히라에게도 소리가 들렸을지도 모르겠다. 유리로 된 사탕 그릇을 손 끝으로 두어 번 두드리던 이츠키가 안절부절 못하는 공방의 점원을 건너다 보았다. 달리 생각해보면 못할 것도 없겠지. 창고에서만 수십 년의 세월을 보낸 인형이 인간의 앞에서 옛날 이야기나 하고 있는 건 확실히 우스운 모양새이긴 하겠지만, 어차피 쓸모를 다 한 명예로운 입장도 아닌 주제에 거짓말을 한 것도 사실이니, 저것이나 공방 주인의 마음이 바뀌어 저를 소각하기 전에 자신의 이야기를 한 명에게라도 남겨두는 건 밑지는 장사는 아닐 것이었다. 

 

 

 "…뭐, 그러마. 그러니 상처 받은 고양이 같은 얼굴로 바라보는 건 그만두도록."

 "진짜? 진짜제?"

 "같은 말을 두 번 하게 하지 말라는 거다. 기억이 흐려진 부분도 간혹… 아니, 꽤 많은 걸 감안하고 들어야 할 게야."

 

 

 응, 고맙데이! 그제야 안심한 듯 포장을 깐 사탕을 입에 털어넣는 카게히라를 보며 이츠키는 천천히 기억을 되짚기 시작했다. 여느 인간의 생을 두세 개나 이어붙인 것에 맞먹는 시간을 살아온 인형은 정작 지나간 일을 기억하는 것에는 그리 능하지 못했다. 구태여 궁금해하는 이도 없었을 뿐더러, 애초에 일상이라는 것의 진폭이 크지 않았으니까. 남아있는 추억은 대부분 빛이 바래고 먼지만 쌓인, 머나먼 나날의 것들이었다. 이제는 필시 세상에 그 흔적조차 남아있지 않을 '주인'과 함께하던 시절의 이야기. 인형의 태엽은 이백 해 전으로 되감긴다. 맨 처음 세상과 조우했을 적으로.

 

 그는 쉬이 웃음을 보이는 사람이 아니었다. 꼭 필요한 말이 아니라면 스스로 입을 여는 것도, 상대의 말을 듣는 것도 그리 즐기는 편이 아니었을 뿐더러 미소라도 띄우지 않으면 일견 차갑게도 보이는 인상이었기에 종종 오해를 사곤 했으나 또 그걸 일일이 반박하는 일도 없었다. 교류는 최소한의 사람과, 마음은 정해진 이에게만. 그런 철칙을 갖고 줄곧 작업실에만 틀어박혀 일하던 인형사의 손에서 제가 만들어진 건 우연한 일도 아니라고 생각했다. …네 이름은 이츠키 슈다. 막 태엽이 감겼을 때 들은 첫 마디는 그것이었다. 잠깐 말을 고르는가 싶던 젊은 신은 어깨를 으쓱해보이고는 다시 입을 열었다. 특별히 내 이름을 선사해준 것이니, 영광으로 여기거라. 너는 나의 걸작이니까 이 이름이 아깝지 않아. 낡기에는 너무도 일렀던 기계 장치로 된 두뇌에 꽂히는 말의 어감은 그리 나쁘지 않았다. 날마다 그가 만들어주는 갖가지 옷이며 장신구를 걸치고, 낮이면 그의 공방에서 함께 시간을 보내는 심심풀이용 인형. 하지만 진열대에 늘어서 새 주인을 기다리는 구체 관절 인형들을 볼 때면 기묘한 감정이 샘솟곤 하는 것이었다. 우월감이라고 하던가. 어떤 일이 생겨도 이곳을 떠날 일이 없다는 것은 자의적인 사고가 가능한 인형에게도 꽤나 마음이 놓이는 사실이었기에, 조금은 안주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작디작은 행복, 나의 몫이라고 부를 수 있는 최소한의 공간, 그가 종종 모형 정원이라고 말하던 그곳에서.

 

 그에게는 연인이 있었다. 전등 빛을 받으면 초록색으로 반짝이는 머리칼과, 꼭 인형의 것인 양 서로 색이 다른 두 눈동자를 가진 붙임성이 좋고 사랑스러운 사람. 눈의 색은 지금까지도 기억하고 있다. 그가 저를 위한 장신구를 만들 때 필히 사용하곤 하던 보석과 똑 닮아있었으니까. 아, 그래. 청금석과 호박이었다. 언제부터인가 그의 왼손 약지에서 보이게 된 반지도 역시 같은 보석을 사용한 것이었다. 카게히라, 분명 그런 이름을 갖고 있었던 그는 저를 유난히 귀여워 해주었기에 정이 붙지 않으려야 않을 도리도 없었다. 공방에 들를 때마다 서툴게 떠온 케이프며 목도리의 솜씨가 차츰 늘어가는 게 제 주인의 덕택이리라는 것 역시도 인형은 알고 있었다.

 

 

 "듣고 있나, I? 카게히라에게 청혼을 하러 갈 생각이다. 공방을 같이 운영하고, 금요일 오후에는 이따금 가게 문이라도 닫고 기차 여행을 다니려고 해…. 물론 너도 데려가마. 생각만으로도 들뜨지 않느냐는 게야!"

 "…눈치는 귀갓길에 버려두고 왔나, 이제서야 청혼이라고?"

 "나는 네게 독설을 탑재한 기억이 없다만…. 아아, 아무래도 좋아. 우리는 필시 행복해질 테니."

 

 

 꿈이라도 꾸는 듯한 눈빛과 말씨. 카게히라에 관한 이야기를 할 때면 그는 늘 현실과 어느 정도 유리되어 있는 것만 같았다. 그토록 웃는 것도, 그토록 말 수가 늘어나는 것도, 모두 드문 일이었으니까. 그제야 요즘 들어 그가 작업 중이던 러프 스케치의 용도를 깨달았다. 카게히라가 불쑥 문을 열고 들어올 때면 불에라도 덴 듯 화들짝 놀라며 화첩을 덮을 생각도 않고 제 품에 안겨주더니만, 예복이라도 그리고 있었던 모양이지. 신을 웃게 한 사람이라면, 필히 카게히라 역시도 보통의 인간은 아니리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어디에도 묶여있지 않을 것만 같던 그로 하여금 미래를 논하게 하지 않았는가. 그것도 단 한 사람과의 미래를.

 

 

 "…다만… 문제가 있어."

 "…?"

 "바깥의 일이… 하루빨리 마무리 된다면 좋을 텐데."

 

 

 그렇지 않으면 마을에 계속 남아있을 수 없으니까…. 한 순간 몰려온 먹구름이 그의 낯을 빠르게 뒤덮었다. 바깥의 일. 그 건에 대해서, 이츠키는 모르지 않았다.

 

 그는 요즈음 공방 문을 닫아두는 일이 잦았다. 본래 손님들과 몇 명인가의 직원으로 복작거리던 공방 일 층은, 통유리창마저 검은 커튼으로 가려둔 채 낯선 얼굴들과의 긴박한 토론의 장이 되었다. 저에게만 낯설었을 뿐, 그에게는 가까운 친우쯤 되는 모양이었지만. 계단 참에서 내려다 본 신의 얼굴은 늘 어두웠으며 이따금 입술을 짓씹거나 마른 세수를 하기도 했다. 작업에 있어서도 진척이 막히는 일이 드문 그였기에 이츠키는 번번이 다가가지 못하고 도로 이 층으로 향해버리는 것이었다. 간간이 듣기로는 혁명이니 황제니 하는 단어들이 토막난 채 귓가로 흘러들어올 따름이었다.

 

 그가 카게히라에게 청혼을 한다며 반지를 자켓 안주머니에 들고 다니기 시작한 지 이 주가 다 되어가던 어느날이었다. 그날따라 바람이 거셌고, 무엇을 경계하는지 잔뜩 날이 선 채 방으로 올라온 그는 재빨리 모든 창문에 커튼을 달았다. 검은색 벨벳으로 된 커튼은 꼭 상을 당한 집처럼도 보였다.

 

 

 "거절 당한 건가?"

 "아니… 더 큰 위기라는 거다. 이제는 말조차 할 수 없게 되었어."

 "어째서? 어제까지도 분명 - "

 "상황이 악화되었다. 우리가… 더는 여기 머물 수 없을 것 같아."

 "…."

 "그러니, 부탁을 하나 들어주겠나."

 

 

 이야기를 들어달라고 하는 조물주의 말을 거절할 권한이 인형에게는 없었다. 그는 왼손 약지에서 여전히 빼지 않고 있던 반지를 초조하게 매만지며 아주 낮은 목소리로 옛날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러니까, 자신에게는 꼭 구약 성서와도 같은 그 이야기를.

 나는 그 아이를 지나칠 수가 없었어. 공방 앞에서 그 애를 처음 봤을 때부터, 어째서인지 쭉 그랬었지…. 영혼 깊은 곳에 무언가가 새겨져 있기라도 했던 걸까, 그때껏 그저 생명의 공급원이던 심장이 세간에서 말하는 제 기능을 하기 시작하더군. 사랑이었다. 하지만 너도 알다시피, 왜 모든 비극의 시발점 역시 사랑이겠나. 그게 가져올 부작용을 알았던 건지, 나는 유독 카게히라의 앞에만 서면 좋은 말을 할 수가 없었어. 핑계라는 건 알고 있다만, 그 시절에는 유난히 가시가 돋혀 있었지. 미숙하기 그지없는 치기를 애정으로 포장하기 바쁜 어린 애들마냥, 눈을 잘못 끼운 거냐는 말까지도 일삼았었다. 결국 그 눈에 비친 나를 그토록 고대하게 될 줄을 모르고. 그래도 그 아이는 용케 나를 떠나지 않았어…. 갈 곳이 없었다고, 스스로도 말했었지만. 아무리 그래도 인간이 되어 선택한 곳이 내 곁이라면, 나도 달라져야 하지 않았겠나. 그때부터 사랑스러운 말을 쏟아붓고 싶어졌던 거야. 실제로도 그렇게 해왔고. 이제서야 하는 말이지만, 너를 만든 것도 그 아이에게 선물하기 위해서였다. 언젠가 나와 닮은, 가장 아름다운 걸 줄 수 있다면… 본디 외로움만이 예술의 원천이던 내게 있어서 최고의 전환점이 찾아온 게지. 공방에서 여러 차례 보았겠지만, 거기 늘어놓인 다른 어떤 인형들보다도 너는 아름다워. 언젠가 그 아이와 미래를 약속하는 날이 온다면, 너를 반드시 데려가겠노라고 말한 것도 그래서였지. 너야말로 나의 삶에 카게히라가 자리 잡기 시작한 이래의 기록이자 산물이니까. 그 아이도 좋아할 거라고 생각했어.

 한데, 문제가 생기고 만 거다…. 나라가 어지러워. 나는 혁명군의 편에 서기를 택했고, 그 아이도 나와 뜻을 같이 했기에 우리는 세상을 뒤집기로 마음 먹었지. 뜻이 맞는 동료들도 몇 명이나 모았어. 참모를 맡고 있는 와타루도, 서기를 맡은 카나타와 나츠메도… 그 밖의 다른 사람들도 모두 열정적인 이들이니까, 잘 될 거라고만 믿었다. 악식의 황제가 다스리는 이 세상을, 바꿀 수 있을 거라고… 무모하게도 그렇게만 믿었던 게야. 낮에는 공방에서 인형에게 입힐 옷을 만들고, 밤에는 동료들과 모이면서, 일상의 끈을 놓지 않으려고 애를 썼어. 어쩌면 그건 발악이었는지도 모르겠구나, 현명한 인간이란 언제든 최악의 상황 정도는 염두에 두는 것이 기본이고. 적어도 내일 당장 죽는다고 하더라도… 내가 존재하던 흔적쯤은 남겨두고 싶은, 그런 마음이었겠지. 일상의 자국이 남은 자리에 누가 와서 앉더라도 나를 기억할 수 있도록. 적어도 모든 게 들통나고 만 지금에 와서는, 그럴 수라도 있었던 시간이 아득하게만 느껴지는구나.

 아니, 다행히 우리 가운데 밀고를 한 사람은 없었다. 그게 그렇게도 마음이 놓이더군…. 적어도 한 번 믿기로 한 이들을 계속 믿을 수 있다는 것이니까. 그마저도 이제는 끝까지, 일까.

 조금 전에 카게히라를 만나고 오는 길이다만, 그 아이가 그렇게 말하더구나. 떠나자고. 내일 새벽의 첫 차로. 아마 돌아오는 길은 없을 테고, 있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떠났을 때의 우리가 아닐 텐데도, 무모하기도 하지. 그래도 나는 그렇게나 끝 모르고 뛰어드는 그 애가 좋아서, 그 말을 따르기로 했다. 긴 여행이 될 테고, 도중에 영영 헤어져야 할지도 모르지만… 어찌 되었든 둘만의 여행인 건 변치 않으니까. 이런 여정이나마 축복해준다면 기쁘겠다만….

 짐은 최소한으로 줄일 생각이지만 너는 반드시 데려갈 작정이야. 그리고 지금 이 얘기를 하는 건, 꼭 너에게 전해야만 하는… 임무가 있기 때문이다. 그 아이의, 카게히라의 얼굴이라면 잘 알고 있겠지? 그래, 빛을 받으면 초록으로 반짝이는 머리카락에… 신께서 총애하셨는지 태양과 정오의 하늘을 빼닮은 그 눈. 그런 아름다움은 맹세코 태어나서 처음 봤다는 게야. 그러니까, 나와 약속해주겠니? 언제가 되든, 설령 그 애가 더는 나와 함께 있지 않다고 하더라도, 카게히라를… 미카를 보거든, 내가 미처 못 다할 몫까지 쓰다듬어 주겠노라고. 너는 인형이고, 인간인 나보다 곱절을 더 살아갈 테니까. 응?

 

 그렇게 말하는 그의 얼굴은 도무지 잊을 수가 없었다. 끝내 범람해버린 눈물로 엉망이 된 낯이며 붉어진 눈시울이, 그 자신이 보더라도 결코 아름답다는 말은 하지 못했을 모양새였으나, 이츠키의 마음 아닌 마음에는 어째서인지 그 상이 또렷하게 맺혀오는 것이었다. 기약 없는 사랑과 형체 없는 이념에 전부를 내던지고, 끝내 서로를 마음에 품은 이와 함께 세상에서 사라지기로 한… 사람이. 제 앞에 놓인 선택지는 이미 하나밖에 없었다.

 

 이야기를 듣는 내내 카게히라는 숙연하기까지 한 침묵으로 일관하는 것이었다. 말을 마친 이츠키가 손수건을 건네주었으나, 눈가에 맺힌 눈물을 닦을 생각도 않고 그저 제 얼굴과 손수건만 번갈아 바라볼 따름이었다.

 

 

 "칫, 울길 바라고 한 이야기가 아니란 게야."

 "그래도… 슬프잖나."

 "…그래, 슬프지. 결국 두 사람은 다음날 첫 기차를 타고 떠났어…. 나도 함께였지만, 공교롭게도 내가 목격한 두 사람의 모습은 그게 마지막이었다. 정보가 새어나갔는지, 혁명군의 수뇌부였던 둘을 노린 정부군이 돌연 열차를 포위했으니까."

 "에, 슈 씨… 그러니까, 사람 슈 씨가 그래 높은 사람이었나?"

 "높은 사람이라고 하기에도 이제는 애매하지만 말이지. 아마 말하는 자동 인형인 나조차 그들의 손에 넘어갔을 때에 대비해서, 중요한 정보는 흐렸을 거라고 생각해. 그 직후에 두 사람과도 헤어져서, 나는 운 나쁘게도 황제의 손에까지 들어간 게야. 그래, 나의 주인을 그런 사지까지 몰아넣은 마수였다. 나는 들킬 걸 각오하고 끝까지 군수용 안드로이드인 척 일관했지만… 다행인지 그 치는 오토마타에 대해서는 문외한이라, 두어 번 나를 사격에 데리고 간 걸 끝으로 흥미를 잃어버렸어. 그 뒤로는 곧장 창고에 갇혀 허송세월이었다."

 "사람 슈 씨랑, 그… 미카 씨에 관해서는, 그 뒤로 암것도 못 들었나?"

 "…안타깝게도. 아마 멀리 가지 못하고 죽었을 가능성이 높지만… 마지막이 외롭지 않았기를 바라는 마음은 지금껏 남아있다는 게야."

 "…으응……."

 

 

 카게히라의 대답이 차츰 잦아든다. 처음 만난 날부터 별안간 제 머리를 쓰다듬고 의아해하던 인형을 앞에 둔 채 한참 골몰해 있던 그가 느리게 말을 꺼냈다.

 

 

 "…그래도 슈 씨, 약속 지켰다 아이가."

 "약속?"

 "응, 내를 처음 봤을 때 불쑥 쓰다듬어 줬었제…. 그거, 사람 슈 씨랑 했던 약속이잖나."

 "……듣고 보니 그렇구나. 나조차도 너무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기억이라, 무심코 행동에 옮겨 놓고도 설명하질 못했어."

 

 

 이제는 형체조차 분명치 못할 정도로 아득한 기억을 조심스럽게 더듬어 나간다. 분명 저런 얼굴에, 저런 상에, 저런 표정으로 웃었었지. 카게히라 미카는. 잔상이 수면 너머로 부옇게 떠오른다. 죽음 이후에는 영면만이 존재한다고, 저를 만든 사람은 그렇게 말해주었으나 어쩌면 재생(再生)도 가능한 것이 아닐까…. 떠오른 잔상이 두 사람의 인영으로 바뀌고, 선명한 생김새를 갖추어 가도록, 그건 아주 오랫동안 그 자리에 있었다. 이츠키는 손을 들어 카게히라의 머리 위에 부드럽게 내려 놓았다. 망설이다가 번져가는 손길이 따스하다. 그가 햇살처럼 웃었다.

 

 

 "이제 네 이야기라도 해주는 게 어떻지, 카게히라."

 "응아, 내? 내 얘기는 별로 들을 것도 없데이?"

 "인간은 저마다의 이야기로 구성된 존재라는 게야. 머리카락 한 올에도 쓰다듬어준 사람이 있고, 손에도 맞잡아준 이가 있질 않느냐."

 "…으응… 그런가. 그럼, 재미 없어도 들어도?"

 "기꺼이."

 

 

 창 밖으로 차츰 해가 기울고 있었다. 익숙한 단골들이 몇 명 다녀간 뒤 카게히라는 카운터에서 작업하기 위해 가지고 내려왔던 뜨개질감을 도로 이 층에 가져다 두었다. 내일의 영업을 준비하는 시간이었다. 바지런히 진열대를 손본다, 각도가 틀어진 인형을 바로 세워둔다며 움직이는 카게히라를 바라보던 이츠키에게 문득 낯익은 소리가 들려왔다. 가게 문에 달린 풍경이 짤랑이며 자아내는 울림.

 

 

 "카게히라, 손님이 왔다만… 그래서 간판을 먼저 끄라고 하지 않았더냐."

 "응앗, 내 금방 간데이-!"

 

 

 문을 열고 들어온 이들은 잠깐 머쓱하게 서로를 바라보다가 내일 다시 들르겠다며 문을 도로 닫으려 했다. 때마침 계단참에서 부리나케 달려온 카게히라가 저지하기 전까지는.

 

 

 "마감하던 중인데, 여까지 와주셨으니까 봐주시고 가셔도 괜찮아예."

 "…괜찮습니다. 열차가 조금 늦게 도착하는 바람에, 폐를 끼쳤군요. 내일 다시 오겠습니다. 슬슬 돌아가자꾸나, 카게히라."

 "오늘은 여느 때보다 일찍 닫을라 캤던 거니까, 아직 영업 시간이구… 둘러보고 가주시믄 기쁠 겁니데이. 멀리서 오신 것 같으니까 잠 잘 오는 차라도 내려드릴게예."

 

 

 이 순간을 위해서, 재생이란 있다고 믿어왔던 것일까. 밤이면 기온이 제법 낮아지는 날씨에 어울리게끔 긴 트렌치 코트를 입은 두 사람이 서로 눈빛을 교환한다. 공방의 점원이 차를 끓이러 간 사이에 간간이 들리는 말소리가 퍽 낮고 따스하고, 그리고 다정해서 이츠키는 저도 모르게 입꼬리를 올렸다. 슈 씨, 카게히라, 라며 서로를 칭하는 젊은 연인들의 이야기는 한참을 이어지고, 어느새 떠오른 달도 조용히 빛을 머금는다. 온전한 밤이다. 전기 포트의 물 끓는 소리와 함께 공방의 톱니바퀴가 다시 돌아가기 시작했다. 온화하고 상냥한, 되찾은 시작을 알리는 소리로. 거리에 하나둘 밝혀지는 가로등은 오래, 아주 오랫동안 그토록 사사로운 풍광을 굽어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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