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Novel

글 / 토트슈 / 비밀의 화원

 * 어딘가, 언젠가의 AU입니다.

 

 

 “진짜래이! 내 분명 사람이 우는 소리를 들었다!”

 “황무지 바람 소리일 겁니다. 잘못 들으셨겠죠.”

 “아이다! 전에는 ‘들들들’ 하고 기계 돌아가는 소리도 들었데이!”

 “문이 열고 닫히는 소리입니다. 그만 주무시죠.”

 

 

 드넓은 황무지를 낀 대저택 안에서 하녀를 향한 미카의 목소리엔 답답함이 녹아 있었다. 미카의 궁금하다는 눈길을 애써 피한 하녀는 피곤하신 것 같으니 이만 주무시라며 램프의 불을 끄고 서둘러 문 밖으로 발길을 돌렸다. 캄캄한 암흑 속의 미카는 허공을 응시하며 눈을 깜빡였다. 분명히, 내 우는 소리를 들었는데.

 

 인도에서 부모님을 장티푸스로 잃은 미카는 하인들이 모두 도망간 후 방치된 채 사람들에게 발견되었다. 친인척 중 미카에게 손을 벌리려고 하는 사람들이 아무도 없었기에, 미카는 아버지의 가장 친한 친구이자 자신의 대부의 집, 이츠키 가(家)에 몸을 의탁하게 되었다. 날씨가 점차 풀리고는 있지만 그래도 아직 겨울이라 그런지, 아무것도 피지 않은 드넓은 황무지 가운데 놓인 이츠키 가의 집은 황량하고 피폐하기 그지없었다. 게다가 설상가상으로, 요즘은 비마저 추적추적 내리고 있었다. 황무지를 바라보며 흙이 풀려 향긋하고 촉촉한 냄새가 날 때가 되면, 내가 꽃을 심어야겠구마. 미카는 이렇게 생각하곤 했다.

 

 그러나 그렇게 여러가지 만물이 생동하는 봄을 떠올려봐도 이 집이 을씨년스러울 것 같은 걸 미카는 부정할 수 없었다. 이따금씩 들려오는 울음소리와 기계가 돌아가는 소리, 이에 대해 물어도 하인들은 무언가를 감추는 눈치였다. 새벽에 자욱한 안개에 싸인 이 집의 외관처럼, 형체는 보여줘도 본질은 숨기고 있는 것 같았다. 미카는 이 집이 이츠키 가의 집이라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아는 것이 없었다. 게다가 대부님도 자주 출장을 다니시는 터라, 미카는 그에게 제대로 인사를 해본 적이 없었다. 대부는 신경 써주지 못해 미안하다며 집사를 통해 매주 1실링을 보내올 뿐이었다.

 

 닫힌 문의 틈새로 울음소리가 다시금 비집고 들어왔다. 단순한 어린아이의 울음이 아니었다. 누구나 돌아보게 만들 수 있을 만큼 처절하고 깊은 곳에서 끓어올라오는 설움이 담긴 비명이었다. 미카는 자신도 모르게 가슴 속에서 뻗어 나간 손이 비명을 뱉어내는 몸을 끌어안아주는 느낌을 받았다. 미카는 침대에서 벌떡 상체를 일으켰다. 오늘은 기필코 소리의 근원지를 찾아야겠단 생각이, 오늘은 찾을 수 있겠단 직감이 들었다.

 

 

 

*

 

 

 

 미카의 손이 가는 방향에 맞춰 손에 든 촛불이 일렁거렸다. 울음소리는 간헐적으로 이어졌기 때문에 미카는 소리가 끊기면 걸음을 멈췄다가 다시 들리는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울음소리는 언젠가 복도를 헤매다가 가정부에게 모진 소리를 들었던 곳 쪽에서 가까이 들려왔다. 그 복도로 걸음을 옮기자 캄캄한 어둠 속에 몸을 숨긴 방들 중 한 곳에서 희미하게 불빛이 새어 나왔다. 미카는 꿀꺽 침을 한 번 삼키고 살그머니 문을 열었다.

 

 고풍스럽고 근사한 가구들로 채워진 방이었다. 벽난로에는 잦아든 장작불이 희미하게 빛났고 등불이 네 기둥에 조각을 새기고 그 위에 차양을 드리운 침대 옆에서 빛났다. 한 남자가 침대에서 문을 등진 채 몸을 웅크리고 울음소리를 흘리고 있었다. 미카는 더 자세히 보려 촛불을 남자에게 가까이했다. 남자는 몸이 흠뻑 젖도록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 다물어진 이 사이로 울음소리가 비집고 나왔고 몸은 얼음물에 빠졌던 새처럼 파르르 떨고 있었다.

 

 

 “그만… 그만해라…”

 

 

 남자는 꿈을 꾸는 듯했다. 그것도 지독한 악몽을. 좁혀진 미간은 좀처럼 펴질 줄 몰랐고 울음소리도 점점 크기를 키워갔다. 미카는 우선 악몽에 발목이 잡힌 그를 도와주려 그의 마른 어깨를 조심스레 흔들었다.

 

 

 “저기... 괘안나? 일어나 보래이…”

 “내 잘못이… 아니….”

 “괘… 괘안은기가?”

 

 

 어깨를 흔드는 강도를 높이자 그의 미간이 점점 구겨졌다. 그러다 어둠 속에서 눈꺼풀을 서서히 들어올렸다. 일렁이는 촛불 밑으로 그리운 그림자 사이로 보이는 눈동자는 보라색이었다. 남자는 아직 꿈의 잔상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듯 느리게 눈을 깜빡였다. 그러다 웅크린 몸을 피고 나지막하게 말을 뱉었다. 또 그 꿈인가… 그는 옆으로 돌린 몸을 바로 하다 미카의 유리색, 호박색 눈동자와 마주했다.

 

 

 “ㄴ...누구냐! 귀신인가?”

 “아… 아니래이! 내 며칠 전부터 이 집에서 신세를 지게 됐다.”

 “신세라… 네가 인도에서 왔다는 카게히라인가?”

 “그렇데이…”

 

 

 그는 미카가 유령이 아니란 걸 확인하려는 듯 상체를 일으켜 미카가 촛불을 든 쪽의 손목을 부드럽게 감싸 쥐었다. 차가운 다섯 갈래의 가닥이 몸에 닿아오는 것에 미카는 몸을 흠칫 떨었다. 자주색 두 눈동자가 미카의 온 몸을 빠르게 흝고 지나갔다. 보석을 물고 있는 까마귀 같군. 그가 작게 중얼거리는 소리에 미카가 입을 열자 그는 다시 말을 이었다.

 

 

 “밤이 깊었다. 방으로 돌아가도록.”

 “그치만…”

 “뭘 망설이는 게야.”

 “이름이, 이름이 뭔지… 알려줄 수 있나?”

 

 

 그의 눈이 잠시 커지며 일렁였다. 마치 자신의 이름을 모른다는 것이 꽤나 의아한 듯 그는 입술을 한 번 깨물고 그 질문에 응해주었다.

 

 

 “이츠키 슈.”

 “이츠키…? 대부님과 무슨 사이인기가?”

 “아무것도 모르는 것이냐? 대체 이 집에 무슨 생각으로 왔는지 모르겠군. 이만 방으로 돌아가라.”

 “내 인도에서 올 때 아무도 얘기해주지 않았데이…”

 “……”

 “……”

 “다시 잠을 청하려 하니 이젠 돌아가란게야.”

 

 

 미카는 저택 안 깊숙이 숨겨진 방 안에 홀로 남겨질 슈를 떠올리니 어딘가 쓸쓸한 기분이 들었다. 도로 이불을 끌어와 자리에 눕는 그의 마른 등에서 비애가 묻어져 나왔다. 미카는 머뭇거리다 눈을 감아 잠을 청하는 슈에게 말을 꺼냈다.

 

 

 “다음에! 다음에 괜찮다면… 또 와도 되나?”

 

 

 ….마음대로 하라는 게야. 슈가 작은 목소리로 답했다. 그래도 부정의 표시를 받지 않은 미카는 헤헤 소리를 내며 배시시 웃고 말았다. 침대에서 멀어진 미카는 작게 속삭였다. 내일, 내 또 올게. 오래된 방문이 끼이익 소리를 내며 닫혔다.

 

 

 

*

 

 

 

 눈을 감아도 작은 틈새 사이로 비집고 들어오는 강렬한 햇살에 미카는 부스스 눈을 떴다. 젊은 하녀가 불을 피우려고 방 안으로 들어와 난로 깔개 위에 무릎을 꿇고 재를 긁어내고 있었다. 잠긴 목을 다듬으려 고양이처럼 그르릉 소리를 내며 기지개를 펴자, 하녀가 뒤를 돌아보고는 아침인사를 해왔다.

 

 

 “안녕히 주무셨습니까?”

 “응! 좋은 아침이다!”

 

 

 미카가 배시시 웃고 빛이 들어오는 창문으로 고개를 돌렸다. 밤새 내리던 비는 어느새 그쳐 있었다. 침대에서 일어나 창문을 열자 한기를 조금 누그러뜨린 바람이 기분 좋게 옷자락을 스치고 지나갔다. 창문 앞의 벚나무에도 분홍기가 어렸다. 봄이 오고 있구마… 미카가 중얼거리자 난로의 재를 다 긁어낸 하녀가 무릎을 탁탁 털며 말을 붙였다.

 

 

 “이제 비가 그쳤으니 밖에 나가 보세요. 흙이 부드러워졌을 거예요.”

 “응. 알겠데이! 며칠 간 비가 내려서 나가지도 몬하고 갑갑했데이.”

 

 

 미카는 재빨리 채비를 마치고 밖으로 나왔다. 평소와는 다르게 비에 젖은 흙내음이 코를 찔렀다. 한 발짝 내딛자 물을 머금은 흙이 부드럽게 발자국에 맞춰 밀렸다. 봄이 가까워졌다는 사실이 피부에 와 닿았다. 봄이 오면 이 으스스한 황무지도 좀 더 화사해지면 좋겠다. 꽃도 피겄제? 갓 세상에 나온 것처럼 미카는 저택 마당의 이곳저곳을 쏘다녔다. 큰 저택을 끼고 빙 돌아 뒤뜰로 가자 화려하고 고급스러운 문양이 새겨진 흰 창살이 더 가볼 수 없게 막고 있었다. 미카 키의 두 배나 되고 레이스 모양이 촘촘히 박혀 있는 펜스 덕분에 미카는 그 안을 낑낑대며 들여다보다 이내 그만두었다. 울타리를 쭉 따라가자 웅장한 문 두 짝이 나타났다. 정교한 아름다움에 압도당한 미카는 감탄을 내뱉고 문을 천천히 밀어보았다. 그러나 두 문은 뒤로 조금만 밀릴 뿐 서로 떨어지질 않았다. 쌍여닫이문은 서로 떨어질 수 없게 자물쇠로 튼튼히 묶여 있었다. 그것은 예술 작품에 쇠사슬을 걸친 마냥 매우 이질적이었다. 잠겨 있나… 묵직한 자물쇠를 몇 번 들어보던 미카는 아쉬운 발걸음을 돌렸다.

 

 

 

*

 

 

 

 으슥한 밤이 찾아오고 하녀가 불을 끄고 나가자 미카는 자는 척 감았던 눈을 슬그머니 떴다. 이윽고 침대에서 조심스레 내려와 어젯밤보다 조금 짧아진 초에 불을 붙였다. 오늘은 울음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복도를 살금살금 지나와 슈의 방문 앞에 다다른 미카는 침을 꿀꺽 삼켰다. 조심스레 문을 두드리자. 안에서 ‘들어와라.’ 라는 말이 돌아왔다. 방문을 조심스레 열자 차를 우리고 있는 슈가 미카의 시야에 들어왔다.

 

 

 “좋은 밤이래이! 내 오늘 또 왔다.”

 “…들어왔으면 가만히 서 있지만 말고 와서 앉아라.”

 

 

 생각보다 호의적인 대답이 돌아와 미카는 내심 기뻐하며 슈가 권한 의자에 앉았다. 곧이어 미카의 앞에 따뜻한 차 한 잔이 놓였다. 크루아상을 가져온 뒤 책상을 사이에 하나 두고 슈가 앉아 입을 열었다.

 

 “몸을 따뜻하게 덥혀줄 거다. 식기 전에 마셔라.”

 “우와… 내 이런 것 까진 기대 몬 했는데… 잘 먹겠데이!”

 

 

 찻물이 열과 그윽한 향을 품고 식도를 타고 내려갔다. 몸이 곧 따뜻해졌다. 흐흥. 기분 좋은 웃음소리를 낸 미카가 크루아상을 집어 입으로 가져갔다. 부스러기는 흘리지 말라는 게야! 슈가 앞접시를 가져오기도 전에 초승달을 닮은 빵은 금세 미카의 입 안으로 자취를 감췄다. 크루아상이 사라진 입에서는 곧이어 감탄사가 터져나왔다.

 

 

 “이기 뭔가! 내 이렇게 맛있는 빵은 처음 먹어본데이!”

 “크루아상이라는 빵이다. 처음 보는 것이냐?”

 “으응! 인도에선 주로 쌀을 먹었고 여기에선 아침엔 식빵에 잼을 발라먹는데이. 이게 그거보다 훨 맛있구마!”

 

 

 미카가 빵을 우물우물 씹는 동안 슈는 옷을 가져와 바느질을 하기 시작했다. 손목에 프릴을 다는 작업이었다. 슈가 오른손을 바삐 놀리자 점점 형태가 잡혀 나갔다. 방 안에는 벽난로에서 불이 타닥거리는 소리만 들릴 뿐 정적이 맴돌았다.

 

 

 “잘 먹었데이!”

 

 

 빵이 담긴 그릇을 깨끗이 비운 미카는 어색한 정적에 괜히 헛기침을 했다. 침묵이 아무렇지도 않은지 슈는 계속 바느질을 이어 나갔다. 미카는 유리알 같은 눈동자를 굴리다 슈에게 넌지시 말을 건넸다.

 

 

 “지금 뭐 하나..?”

 “보다시피 옷을 만들고 있다.”

 “내 좀 더 가까이서 봐도 되나?”

 

 

 미카가 의자에서 일어나 옆으로 조심스레 다가갔다. 슈가 다듬고 있는 옷을 본 미카의 입에선 또 다시 감탄사가 흘러나왔다. 우와… 이 옷 누구 건가? 무지 이쁘데이! 미카의 순수한 칭찬에 슈는 잠깐 멈칫하더니, 내가 만들었으니 당연하지 않겠느냐. 하고 답해왔다. 미카는 가만히 슈가 손을 놀리는 것을 보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왜 이츠키 가의 사람이 있다고 아무도 말을 해주지 않은 걸까? 왜 밤중에 들리는 울음소리를 숨기려 했을까? 왜 그는 울고 있었을까? 알 수 없는 것들이 많아 미카는 앓는 소리를 냈다.

 

 그러나 슈가 오랜 시간동안 외로웠겠다는 건 알 수 있겠다고 미카는 생각했다. 그 와중에 슈는 바느질을 마무리 짓고 쪽가위로 긴 실을 톡 잘라냈다. 슈가 옷을 들어올리자 고풍스러우면서도 멋스러운 가디건이 슈의 손을 따라 나풀거렸다.

 

 

 “내도! 바느질…”

 “..….”

 “해보고 싶다. 가르쳐줄 수 있나?”

 

 

 옷을 꼼꼼히 뜯어보던 슈의 눈이 미카에게 향했다. 자주색 눈동자가 뜷어지게 쳐다보자 미카는 눈을 돌리며 말을 덧붙였다. ㄱ…귀찮다면 그냥 무시해도 된다! 내가 괜한 말을 해뿟나…. 아하하. 어색한 웃음을 흘리자 슈가 가디건을 말끔하게 개며 입을 열었다.

 

 

 “귀찮게 하는군. 원한다면 가르쳐 줄 수는 있다. 나에게 가르침 받는 걸 감사히 여기도록.”

 “진짜가? 우와아..! 내 기쁘다! 앞으로 이 시간대에 오겠데이!”

 “밤 11시마다 내 방으로 와라.”

 “응!!”

 

 

 밤이 깊어지자 미카의 입에서 조금씩 하품이 비집고 나오기 시작했다. 그런 미카를 본 슈는 쯧. 혀를 작게 차며 졸리면 이만 돌아가라 말했다. 내 그럼… 내일 또 올게! 방문을 열고 나가려던 미카에게 무언가 날아왔다. 응앗! 순간적으로 낚아챈 미카는 손에 닿는 보드라운 감촉에 재빨리 자신이 잡은 게 무엇인지를 확인했다.

 

 

 “밤엔 아직 쌀쌀하단게야. 다음 번에 올 때는 그 숄을 두르고 오도록.”

 

 

 곧이어 그 말에 미카는 눈을 접어 환히 웃어 보였다. 으응! 걱정해줘서 고맙데이! 어깨에 숄을 두르고 손을 흔들어 작별인사를 한 뒤 미카는 방을 나섰다. 걱정은 무슨..! 급히 부정하려던 슈의 말은 상대에게 닿지 못하고 벽에 부딪혀 흩어졌다.

 

 방에 도착한 미카는 침대 속으로 꾸물꾸물 기어들어갔다. 숄을 다시 만져보자 부드러운 천에 박힌 문양들이 느껴졌다. 참말로 대단하데이… 부모님이 살아계실 때 화려한 옷들을 수없이도 봐왔지만 이렇게 정교하고 아름다운 것은 처음 보았다. 배부르고 따뜻하게 덥혀진 몸을 침대가 부드럽게 감싸 안자 미카는 자기도 모르게 스르르 잠이 들었다. 숄이 미카의 손아귀에서 스르르 빠져나왔다.

 

 

 

*

 

 

 

 그 이후로 미카는 밤마다 슈의 방으로 향했다. 바느질을 가르쳐주는 슈를 스승님이라 부르기 시작했다. 슈도 나름 그 칭찬이 마음에 든 것 같았다. 바느질을 배우면서 핀잔이나 따가운 말을 듣기도 했지만 미카는 그와 함께 있는 것이 즐거워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옷뿐만 아니라 그는 많은 면에서 출중했다. 그림, 음악에도 조예가 깊었고 역사와 철학에도 박식했다. 인도에서 매일 사교장에 나가는 부모 탓에 방치되었던 미카에겐 이츠키 슈는 새로운 세계였다. 우와! 므찌데이! 호박색과 유리색 눈동자가 빛나며 감탄하고 미카의 입에서 감탄이 터져 나올 때마다 슈의 반응은 유해졌다. 어느 날에는 좀 더 마음껏 칭찬하라고 의기양양하게 나오기도 하고, 어느 날엔 자신의 이 세계의 보물이니 당연하다고도 했다. 또한 미카를 만난 횟수가 많아질수록 밤늦게 들려오는 울음소리도 사그라들었다. 자세한 연유는 모르겠지만, 미카는 다행이라 여겼다. 또한 미카가 입고 있는 옷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옷을 자주 선물해주기도 했다. 그런 그는 좀처럼 자기 얘기를 꺼내질 않았다. 미카가 자신의 일상 얘기를 꺼내면 묵묵히 들어주곤 했으나 금세 대화의 화제를 예술 쪽으로 돌리곤 했다.

 

 

 “내 인도에선 살았을 땐 거의 방치되어 있었데이. 어머니는 날 하인들에게 맡기고 매일 사교회장을 다녔다 칸다.”

 “그랬나.”

 “응! 스승님은 대부님이랑 사이 좋나?”

 “카게히라. 전에 이 음악을 들어본 적이 있느냐?”

 “응? 아… 들어본 적 없데이.”

 

 

 곧 축음기에서 노래가 흘러나왔다. 현악기의 선율이 나팔모양 관을 타고 부드럽게 흘러나왔다. 또다. 이런 식으로 화제를 돌리며 대답해 오지 않는 것이. 미카는 입술을 짓이기다가 시선을 손에 있던 바느질감으로 돌렸다. 스승님. 어쩌면. 나를 별로 안 좋아할 수도 있겠구마. 본인에 대해서 알려주거나 일상 대화를 나누는 걸 피하는 슈를 보며 미카는 그가 자신을 향해 벽을 세우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밤마다 방에 찾아올 수 있게 해주는 것도, 여러가지를 가르쳐 주는 것도, 단순히 집에 머무르게 된 객식구에 대한 호의나 적당한 치레일지도 몰랐다. 그 생각까지 이르자 어쩐지 미카는 풀이 죽었다. 내가 폐 끼치고 있는 건 아니겄제… 우울한 생각에 빠져 있을 때 왼손가락에 전해지는 따끔한 통증에 미카의 입에서 짧은 비명소리가 나왔다.

 

 

 “아야!”

 “카게히라?”

 

 

 가만히 창밖을 바라보고 서있던 슈가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 미카는 천 아래에 가려져 있던 왼손을 들어올렸다. 검지손가락에서 붉은 피가 송송 샘솟고 있었다. 아… 피 난데이… 멍하게 피가 나는 것을 바라보던 미카는 다급히 제 손을 잡아채는 슈에 화들짝 놀랐다.

 

 

 “피가 나고 있지 않느냐!! …이런, 좀 깊게 찔렸나 보군. 바느질을 할 땐 한눈을 팔지 말라고 입이 닳도록 얘기했건만!”

 “미… 미안타, 스승님…”

 

 

 손수건으로 피를 닦아내는 손길이 섬세했다. 이윽고 슈는 부드러운 천을 잘라 검지손가락을 감쌌다. 하얀색 천이 점점 빨간색으로 물들어갔다. 실로 조심스레 손가락과 천을 묶는 슈는 미간을 좁히고 잔소리를 이어 나갔다. 다칠 수도 있으니 항상 조심하라는 게야. 손가락을 그러쥔 그의 손에서 체온이 전달되자 미카는 슈에게서 걱정을 읽어낼 수 있었다. 아. 벽을 세우고 있는 것이 아니었구나. 그 순간 조금 확신이 들었다. 그가 자신을 향해 벽을 세운 것이 아니라, 미카를 만나기 전부터 세워진 벽 안에서 나오지 않고 있다는 것을. 그렇지 않으면 손가락에 피가 났을 때 이렇게 정성스레 치료해주지도 않았을 것이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미카는 용기를 내 궁금한 것을 묻기로 했다. 심호흡을 한 번 크게 한 뒤 미카는 실매듭을 살펴보고 있는 슈에게 말을 걸었다.

 

 

 “스승님… 내 뭐 하나 물어봐도 되나?”

 “……”

 “스승님 왜 내한테 스승님 얘기 안 하는지 궁금하데이.”

 

 

 그 말에 슈가 고개를 들어 미카와 눈을 마주했다. 자주색 눈동자가 미세하게 요동쳤다. 불안감. 혼란스러움이 뒤섞인 채 시선이 흔들렸다. 그러나 그것은 아주 잠시뿐, 파문이 일던 물웅덩이가 잠잠해지듯 슈의 눈동자는 금세 고요를 되찾았다.

 

 

 “딱히 얘기할 필요성을 못 느꼈기 때문이다. 가르침을 줄 시간도 모자란데 쓸데없는 얘기까지 할 이유는 없지 않느냐.”

 “그렇지만! 내 스승님에 대해서 더 알고싶데이!”

 “……”

 

 

 슈가 몸을 일으켜 축음기 앞으로 향하자 미카가 다급하게 말을 이었다.

 

 

 “뭔가 이상하데이. 내 이 집에 올 때도 아무도 스승님에 대해 얘기해 주지 않았다!”

 “굳이 객식구인 너에게 알려줄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겠지.”

 “그… 스승님 방에서 나는 소리를 듣고 물어봐도 다들 시치미를 뗐다! 바람이 부는 소리라카지 않나, 잘못 들은거라 카지 않나.”

 “주제넘는 참견이다, 카게히라. 하인들이 나에 대해 알려주건 말건 그게 너와 무슨 상관이지?”

 

 

 슈의 언성이 살짝 높아지자 미카가 움츠러들었다. 내는 별거 아니고… 스승님이 좋아서… 더 가까워지고 싶어서… 미카가 조심스레 말하자 슈는 마른 세수를 했다. 입술을 몇 번 짓이기더니 이내 다시 입을 열었다.

 

 

 “이야기가 나온 김에 말해주지. 난 나에 대해 절대 알려주지 않을 것이야. 그런 쓸데없는 걸 물어볼 생각이면 앞으로 찾아오지 마라.”

 “스승님!”

 

 

 완고한 목소리에 미카가 슈를 불렀으나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벽을 두드려 보려 했지만 더 시도해 보기도 전에 벽이 한층 완고해진 기분이었다. 괜한 얘기를 꺼냈나? 조금 가까워졌다 생각했는데 내 착각이었나? 자기도 모르게 눈물이 핑 도는 것에 미카는 입술을 꾹 다물었다. 기가 꺾인 채 미카는 방으로 터덜터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그날 밤, 오랜만에 뒤틀린 비명소리가 들려오는 것에 가슴이 미어지는 것 같았다. 미카도 베개 속에 얼굴을 묻고 같이 울었다.

 

 

 

*

 

 

 

 다음 날 미카는 눈이 퉁퉁 부은 채로 아침을 맞이했다. 눈꺼풀이 무거워져 눈이 잘 떠지지 않았다. 미카가 힘겹게 몸을 일으키자 하녀가 아침인사를 해왔다. 창밖이 시끌벅적했다. 미카가 창문을 닫으려 창가로 다가가자 알록달록하고 우스꽝스러운 옷을 입은 광대들이 떼를 지어 지나갔다. 피리 소리와 북소리, 꽥꽥거리는 노랫소리가 바깥에서 울려 퍼졌다. 마치 집 안으로 자기들을 불러서 구경하라는 듯 그들은 거리를 활개치며 돌아다녔다.

 

 

 “광대들이데이…”

 “광대들 공연을 보신 적 있으신가요?”

 “아니….”

 “여기서도 볼 수 있다는 기대는 하지 않으시는 게 좋으실 거예요.”

 “에? 와 그러나?”

 “이츠키 도련님이 천박한걸 싫어하시… 아앗!”

 

 

 하녀는 다급하게 입을 틀어막았다. 도련님? 미카가 반문하자 하녀는 동공이 확장된 채로 고개를 좌우로 세차게 흔들었다. 도련님이라면… 스승님? 혹시 이츠키 슈라는 사람 말하는기가? 미카가 하녀에게 다그치듯 물어보자 입을 틀어막은 하녀의 손이 덜덜 떨리기 시작했다.

 

 

 “이….이름은 또 어떻게 아셨어요. 난 이제 죽은 목숨이네. 이를 어째…”

 “…네 잘못이 아니래이. 사실 내 그 사람 만난 적 있다.”

 “도련님을 만나셨다고요?”

 

 

 틀어막은 입에서는 아까 전보다 더 큰 소리가 튀어나왔다. 손부터 시작한 떨림이 이젠 온 몸으로 번져가고 있었다. 미카는 그녀를 진정시키기 위해 입에 손가락을 가져다 댔다. ‘이츠키 슈’라는 사람에 대해 지금까지 이 집의 모두가 함구했고, 하녀가 이렇게까지 두려워하는 것이 의아했다. 지금 도련님이라는 금기어가 그녀의 부주의로 튀어나온 이상, 그에 대해서 알아낼 방법이 이것 하나라는 생각이 뇌리에 스쳤다. 미카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걱정 말래이. 네가 그 사람에 대해 말 꺼낸 건. 아무한테도 얘기 안 하긋다.”

 “저…정말이세요? 아아 감사합니다. 감사합ㄴ..”

 “대신 말해도. 지금까지 왜 얘기를 해주지 않았는지.”

 “……”

 

 

 

*

 

 

 

 사정은 이러했다. 이츠키 가문의 차남, 이츠키 슈는 마을에서 인정받는 예술가이자 학자였다. 그는 예술에 대해서 잘 모르는 농민이나 상인들에게도 미적 아름다움, 지적 능력을 알리는데 힘썼다 한다. 그래서 인형이나 옷을 만들면 마을 아이들에게 줄곧 선물해주고는 했다. 또한 황무지에 정원을 화사하게 가꿨는데, 그곳에 빈민가의 아이들을 불러 글을 가르쳐주고 함께 책도 읽었다고 한다. 그땐 까칠하더라도 속은 다정하신 분인 줄 알았죠. 하녀는 잠시 회상했다. 모두들 그를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하고 좋아했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 날, 그가 선물한 인형을 받은 아이가 며칠 후에 시름시름 앓다가 죽었다. 원인 모를 전염병의 시작이었다. 그 이후로 어린아이들이 하나 둘씩 쓰러져 갔다. 수습할 수 없는 재난에 서민들은 원인를 슈에게 돌렸다. 그가 아이들을 홀려 저주를 걸었다는 소문이 퍼지기 시작했다. 여러 사람들이 그것을 믿기 시작하자 소문은 그들만의 진실로 변했고 그 진실은 슈를 나락으로 내몰았다. 곧 그가 만든 모든 예술품이 불태워졌다. 슈가 세상 밖으로 나올 때마다 사람들은 그가 흉악한 마법사라며 눈을 치켜 뜨고 삽과 곡괭이를 들고 쫓아다녔다고 한다. 도련님이 그렇게 시커먼 흑심을 품었던 걸 누가 알았겠어요. 하녀는 몸서리치고 다시 말을 이었다. 그래서 그는 지금 저택에서 한 발짝도 나오지 않고, 사람도 만나지 않는다고. 방에서도 예술활동을 꾸준히 하는 걸 보아하니 곧 다시 저주가 시작될 거라며 두려워하는 하녀였다.

 

 미카는 머리를 한 대 세게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그래서… 그래서 아무도 내게 말해주지 않았던 거구나. 슈가 본인의 얘기를 꺼내지 않았던 이유도 그에 비롯된 걸지도 몰랐다. 내 그 사람이랑 만났는데… 나쁜 사람 아니래이! 미카가 얘기하자 하녀는 다시 소스라치게 놀랐다. 그것이 다 저주를 걸려는 속셈이니 속아넘어가지 말라며 신신당부하는 하녀의 말을 한 귀로 흘리며 미카는 생각했다. 스승님의 잘못이 아니래이. 못된 소문에 낙인 찍혔다고 해서 바깥에 나가지 않는다는 건, 너무 힘들지 않나? 그리고 그와 동시에 저택 황무지에 자물쇠가 걸린 육중한 두 문이 떠올랐다. 그곳이 설마, 정원인가? 미카는 다급히 하녀에게 물었다.

 

 

 “그 스승… 아니 도련님이 가꾸던 정원은 어찌 됐나?”

 “...아마 주인님께서 자물쇠를 걸고 열쇠를 그 자리 땅에 묻었던 걸로 기억해요. 저주의 근원지인 장소를 가만 놔둘 수가 있나요.”

 

 

 그 말에 미카는 벌떡 일어나 밖으로 내달렸다. 고맙데이! 문을 박차고 뛰쳐나가는 미카의 뒷모습을 하녀는 멍하니 바라보았다. 황무지로 나온 미카는 큰 저택의 마당을 숨가쁘게 달려 다시 자물쇠가 걸린 문 앞에 섰다. 이윽고 바닥에 주저앉아 땅을 파기 시작했다. 여기 근처에… 있을 텐데… 손톱에 흙이 잔뜩 비집고 들어갔다. 손과 흙 알갱이의 마찰 탓에 쓰라린 통증이 시작될 무렵 손가락 끝에 딱딱한 금속이 부딪혔다. 찾았데이. 땀이 맺힐 정도로 안간힘을 쓰며 그 주위를 파고들어갔다. 이내 녹이 슨 무미건조한 열쇠가 그 윤곽을 드러냈다. 끄응. 미카가 용을 쓰며 손잡이를 잡아당기자 열쇠는 묵은 잡초처럼 쑥 뽑혔다. 가쁜 숨을 몰아쉬고 문에 다가가 자물쇠 구멍에 열쇠를 맞춰 보았다.

 

 끼기긱. 열쇠와 자물쇠가 기괴한 마찰음을 내며 삐걱하게 돌아갔다. 그와 동시에 자물쇠가 풀리고 무거운 쇠사슬이 문고리에서 우르르 떨어졌다. 문은 미카를 환영한다는 듯 서서히 열렸다. 미카가 덜덜 떨리는 다리를 이끌어 정원 안으로 들어갔다.

 

 

 “아직… 살아있데이!”

 

 

 미카는 감탄했다. 한해살이 식물들은 말라비틀어져 있었지만 나무들과 다른 꽃들은 건재했다. 살구꽃과 아카시아의 향이 코를 찌를 정도로 흐드러지게 피어 있었다. 미카는 이 정원을 다시 되살리기로 다짐했다. 내가 예쁘게 다시 가꿔서. 스승님께 보여드릴거래이. 그리고 스승님 잘못이 아이다. 내는 그런 거 안 믿는다. 그리 말해야지. 그리고…

 

 

 “내는 스승님을 좋아한다고.”

 

 

 미카는 손을 탁탁 털고 다시 저택 안으로 내달렸다. 방 안에서 그동안 대부께 받았던 용돈을 주머니에 쑤셔 넣었다. 복도에서 아까 얘기를 나눴던 하녀와 마주치자 그녀를 덥썩 잡아 끌고 가쁜 숨을 골랐다.

 

 

 “혹시… 헥… 근처 시장에… 꽃씨들 파나…”

 “네? 당연하죠. 그건 왜…”

 “내 꽃씨 좀 사다달래이.”

 

 

 미카가 하녀의 손에 돈을 쥐어 주었다. 빨리, 쉽게 가꿀 수 있는 것들 위주로 사다달래이. 모종삽이나, 호미, 갈퀴도… 부탁한데이. 지금 당장 다녀오면 더 좋고. 미카가 하녀의 두 손을 꼭 붙잡고 말하자 하녀는 채비를 하고 다녀오겠다 답했다. 미카는 다시 재건될 정원을 상상하며 그녀를 기다렸다.

 

 

 

*

 

 

 

 미카는 온 힘을 다해 정원을 가꾸었다. 미카의 손에 흙이 묻지 않는 날이 없었다. 바쁘게 목서초와 양귀비 등을 심고 물을 주었다. 혹여나 잡초라도 자랄까 미카는 해가 기울 때까지 정원을 바쁘게 돌아다니며 살폈다. 그렇게 정성을 기울이기를 몇 주, 화원에 심어 뒀던 꽃들이 하나 둘씩 꽃망울을 터뜨리기 시작했다. 색색의 꽃들이 바람에 요동치는 걸 보며 미카도 가슴이 요란하게 요동치는 걸 느꼈다.

 

 미카는 터질 것 같은 가슴을 억누르고 슈의 방으로 향했다. 슈가 밖으로 나와줄지는 미지수였지만, 어떻게 해서라도 정성을 들여 되살린 정원을 보여주고 싶었다. 스승님!! 슈의 방문 앞에서 그를 부르자 안에서 의자가 넘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이윽고 문이 열렸고 미카의 눈에는 이전보다 조금 더 피곤해 보이는 슈가 들어왔다.

 

 

 “…며칠 간 찾아오지 않더니. 갑자기 무슨 일이지?”

 “내… 내 꼭 보여주고 싶은 게 있데이.”

 “그게 무엇이냐.”

 “일단 따라와 보래이!”

 

 

 미카는 무작정 슈의 손을 낚아채 밖으로 이끌었다. 슈의 몸이 순간적으로 앞으로 기울었다 곧 균형을 되찾기도 전에 미카가 이끄는 대로 걸음을 옮길 수밖에 없었다. 잠깐! 기다려라 카게히라! 슈가 다급하게 팔을 끌어당겼다. 앞장서 달려나가던 미카는 그의 힘에 이끌려 그와 눈을 마주했다.

 

 

 “갑자기 이 무슨 짓이냐?”

 “스승님… 스승님 내가 보여주고 싶은 게 저 밖에 있데이. 나랑 한 번만, 한 번만이라도 좋으니까 바깥에 나가면 안 되나?”

 “주제 넘게 제멋대로 구는…”

 “내 이리 부탁한다. 제발, 같이 나가자…”

 

 

 미카가 슈의 허리를 잡고 늘어졌다. 무… 무슨 짓이냐! 당황한 슈가 밀어내려 했으나 미카가 살짝 울음 섞인 목소리로 다시 한 번 부탁하자 그를 밀어내는 손이 갈 곳을 잃었다.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쉰 슈는 동그란 미카의 정수리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래서, 네가 보여주고 싶다는 게, 어떤 거지?

 

 그 말에 미카는 고개를 번쩍 들었다. 가 보면 안데이! 다시 슈의 손을 잡고 그를 이끌었다. 저택 대문을 나와 뒷마당으로 돌아가자 미카는 슈의 손에 점차 힘이 들어가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거의 다 왔다! 모퉁이를 돌자 슈의 눈 앞에 펼쳐진 건 문이 활짝 열려 있는 그의 옛 정원이었다. 슈는 그 자리에서 굳어버릴 수밖에 없었다.

 

 

 “이게… 어떻게……”

 “안으로 들어가자, 스승님.”

 

 

 목석처럼 굳어버린 그를 미카가 다시 잡아 끌었다. 정원으로 한 발짝 내딛을수록 슈는 놀랐다. 그가 가꿨던 예전 모습과는 조금 달랐지만, 분명히 피폐해져 있을 거라 생각했던 정원은 화사한 면모를 그대로 갖고 있었다. 슈의 시선이 자신에 앞에 있는 미카를 향했다.

 

 

 “카게히라, 너…”

 “스승님 정원, 내가 다시 가꿨데이.”

 “어째서… 아버지가 못 들어가게 막았을 터인데…”

 “열쇠를 내가 찾았다. 아, 스승님 그리고.”

 

 

 내, 다 들었다. 하녀에게서. 놀랐던 슈의 표정이 삽시간에 딱딱하게 굳어졌다. 그러자 미카는 재빨리 뒷말을 이었다. 내는 그런 헛소문. 안 믿는데이. 난 스승님이 좋은 사람인 거 안다. 슈의 표정이 점차 오묘하게 변해가는 것을 보며 미카는 다시 입을 열었다.

 

 

 “아이들 죽은 거, 스승님 잘못 아닌 거 알고 있데이. 잘못도 아인데, 왜 죄 없는 스승님이 혼자 괴로워해야 하는데?”

 “……”

 “이쪽으로 더 와보래이.”

 

 

 미카는 발걸음을 재촉했다. 그에게 더 안쪽을, 이 정원의 생명력을 재현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발을 바삐 놀리다 미카는 나무뿌리에 발이 채이고 말았다. 응앗! 미카가 균형을 잃고 바닥에 넘어짐과 동시에 슈의 몸도 균형을 잃었다. 넘어지기 전 반사적으로 눈을 꾹 감은 미카는 생각보다 적은 몸의 통증에 다시 스르르 눈을 떴다. 온 몸으로 자신을 감싸 안은 슈 덕분이었다. 가까워진 슈의 얼굴에 미카는 얼굴을 화르륵 붉혔다. 그와 동시에 옆에서 꽃 향기가 머리가 아플 정도로 밀려들어왔다. 봄날에, 소년 둘이서 꽃밭에 나란히 누웠다. 슈는 생각했다. 눈 앞에 있는 아이는, 정말로 보석을 물고 온 까마귀일지도 모른다고.

 


 

 

 

'Novel' 카테고리의 다른 글

글 / TR / 무제  (0) 2019.11.17
글 / TR / 흔적  (0) 2019.11.17
글 / 아를카미유 / 피노키오의 이명은 이카로스  (0) 2019.11.17
글 / 아키 / 나는 잊지 않았어  (1) 2019.11.17
글 / 제피 / 굴뚝새의 유리집에서  (0) 2019.11.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