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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vel

글 / 카린 / 나방의 춤

 점심 시간이 거의 끝나갈 무렵, 카게히라 미카는 B반 교실에서 비몽사몽 한 채 엎드려 있었다. 무리하게 교내 아르바이트를 늘리고 절약한 탓일까, 요 며칠 새 기운이 하나도 없었다. 그저께는 하루 종일 가든 테라스에서 설거지를 했고, 어제는 교외에 있는 라이브하우스의 뒷정리를 맡느라 몸이 지친 건 물론이요 하루 종일 정신이 없었다. 그리고 오늘도 방과 후 아르바이트가 하나 있다.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랄 지경으로 바쁜 와중, 그나마 숨을 돌릴 수 있는 게 쉬는 시간 잠깐과, 바로 이 점심시간이었다. 원래는 이 시간까지도 아르바이트를 한다는 것을 동거인이 결단코 뜯어말려서 그나마 반 강제적으로 쉴 수 있게 된 것에 가까웠지만.

 

 원래부터 아르바이트를 많이 하고 있긴 했지만, 최근에 아르바이트를 무리해서라도 늘리게 된 이유는 다른 게 아니었다. 토이 박스 이후, 슈가 미카에게 무대를 구상해보라고 제안하는 횟수가 늘게 된 것이었다. 그 때는 운이 좋았던 거라고, 자신같은 불출이 감히 대단한 Valkyrie의 무대를 구상할 수 있었던 것만으로도 행운이었다고 처음에는 손사래를 쳤지만, 스승님은 평소대로의 표정을 지으면서 “이 몸이 그렇게 하는 게 좋을 거라고 결단한 일이다. 딱히 실패작에게 뭔가를 기대하진 않아.” 라고 말할 뿐이었다. “슈 군도 솔직하지 못하네, Valkyrie의 새로운 스펙트럼을 보고 싶은 거잖아?” 라고 마드네가 끼어들어서 칫! 칫! 하고 이상한 분위기로 끝나버린 탓에 조금 뻘쭘해지긴 했지만, 그래도 기뻤다. 자신의 구상이 들어간 무대가 처음으로 대중들 앞에 보여졌을 때의 희열은 생각 이상으로 대단했다.

 

 하지만 그것이 일회적인 한 번이 아닌 여러 번이 된다면, 평소에는 생각하지 않았던 것들을 계속해서 생각해야 한다. 단순히 말만 잘 들으면 되는, 다른 사람의 구상과 의사를 따르는 인형이었을 때에는 생각할 필요 없었던 것.

 

 

 ‘내는 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기고?’

 

 

 운이 좋게도 그 때는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었다. 그것은 그 동안 자신이 마음 한 구석에서 소중하게 키워온, 그렇기에 어느 정도 완성되어 있는 구상을 다듬어서 낸 것에 가까웠으니까. 소중하게 키워온 시간과 정성이 있었기에 비교적 빠르게,그러면서도 괜찮게 구상할 수 있었던 것이기도 했다. 하지만 언제까지나 그 이야기에만 머물러 있다면 언젠가는 뻔하고 지루한 변주곡만이 남을 것이다. 그것은 Valkyrie의 방향성과는 맞지 않는 것이기도 했고, 미카 자신도 만족하지 못할 것이다. 기껏 스승님이 자신에게 맡긴 건데, 그 결단을, 혹시나 있을지도 모르는 일말의 기대를 실망시키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이제 막 의지를 가지기 시작한 인형에게 그것이 쉬울 턱이 없었다. 여전히 그는 시키는 일을 하는 것이 뭔가를 생각하는 것보다 편했고, 쉬웠다.집에 돌아와 이야기 구상을 하러 책상에 앉아 있거나 침대에 누워 있으면, 머릿속이 텅 빈 것처럼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고, 혹은 떠올랐다 해도 그것을 ‘내 이야기’ 라고 말할 수 있는지 알 수 없었다. 착한 아이로서, 인형으로서 타인의 이야기에서 ‘좋은 조연’ 을 맡는 것은 누구보다 잘 했지만, 내가 쓰고 내가 만드는, 내가 ‘주연’ 이 되는 감각은 생경하고 이상하기만 했다. 지금까지 누군가가 시키는 것만 잘 하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갑자기 모든 것을 네가 알아서 하라고 하면 당황하게 되는. 그런 기분이었다.

 

 그 때 점심 방송의 시작을 알리는 곡이 울렸다. 마침 이 시간이 방송 시간이었지. 딱 그 정도의 생각을 한 채 책상에 엎드린 찰나였다.

 

 

 “옛날 옛날 어느 마을에, 하얀 날개를 가진 두 나비가 살았습니다…”

 

 

 스피커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언젠가 나즈나 형이 쓰러진 자신을 찾았을 때 옆에서 어렴풋이 들려온 것 같은 목소리였다. 기억하기로는 아마 Trickstar소속이고, 나즈나 형이 방송부니까 그 형의 직속 후배일 테니까 자신에게 있어서 저 목소리가 적의 목소리라는 건 분명했다. 하지만 어느새, 미카의 마음은 스피커 너머에서 그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따라가고 있었다.

 

 

 “두 나비는 무척 사이가 좋았습니다.저쪽으로 팔랑팔랑. 이쪽으로 팔랑팔랑. 항상 둘이 함께 날고 춤추던 나비들은 사랑에 빠졌습니다.”

 

 

 마치 한 편의 구연 동화를 듣는 것 같았다. 지나치게 과장되지도 않았지만, 그렇다고 국어책 읽듯 딱딱하지도 않은, 몰입감 있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능력. 적이지만, 이런 부분은 조금 배우고 싶을지도. 라고 잠시동안이지만 생각이 들었다.

 그 때, 목소리 톤이 바뀌면서 분위기가 바뀌었다.

 

 

 “그러던 어느 날. 무서운 폭풍이 둘을 덮쳤습니다. 그리고 슬픈 일이 일어났습니다. 차가운 비 탓에 한 마리가 그만 목숨을 잃고 말았던 것입니다. 남겨진 나비는 울었습니다. 눈물이 마를 때까지, 목이 쉴 때까지, 울고, 또 울었습니다.”

 

 

 나비 씨, 자신의 눈물에 빠져 버리는 건 아닐까 모르겠다. 어느 새 이야기를 들려주는 사람의 존재도 까맣게 잊은 채, 그의 온 생각은 스피커 너머에서 들려오는 동화에 집중되어 있었다. 동화를 좋아하면서도 동화를 읽은 건 까마득해서 반가웠던 걸까.

 

 

 “눈물로 만들어진 연못에 빠진 나비를, 우연히 지나가던 나그네가 구해 주었습니다. 왜 울고 있었니. 나그네는 나비에게 물었습니다. 나비는 대답했습니다. 소중한 반쪽을 잃어서 슬프기 때문이라고요. 그러자 나그네가 말했습니다. 그럼 사이키델리카에 가렴.”

 

 

 이야기는 여기서 잠시 멈췄고, 스피커에서는 신청곡이 흘러나왔다. 평소 같았으면 목소리를 잠시 피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 한 숨 돌렸을 텐데, 왠지 모르게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다. 몰입을 방해받은 것 같아 살짝 짜증이 나기도 했다. 사이키델리카. 사이키델리카라. 낙원에 대한 이야기라고 하니, 아마 사이키델리카는 그 낙원을 칭하는 이름일 것이다. 뭔가 멋진 단어라는 생각이 들었고, 몽환적인 느낌도 들었다. 어쩌면 다음 무대 구상에 써먹을 수도 있지 않을까? 작은 기대를 갖고 노래가 끝나길 기다렸다. 스피커에서는 다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아까 들려드린 노래는 낙원에 대한,꽤 유명한 노래였죠. 이 노래를 들려드린 건, 아까 하던 이야기를 계속 하기 위해서이기도 해요. 나그네는 이어서 말했습니다. 이 길 끝에는 사이키델리카라는 낙원이 있는데, 죽은 자들은 모두 그 곳에서 행복하게 살고 있다고 한단다. 네가 바라는 것이 정말 그곳에 있다면, 사이키델리카에 가렴.

 나비는 망설이지 않고 말했습니다. 다시 한 번 만나고 싶어. 다시 한 번 만날 수만 있다면. 나그네에게 작별 인사를 고한 나비는, 망설이지 않고 사이키델리카를 향해 여행을 떠났습니다.”

 

 

 죽은 자들의 낙원.

 그것은 스승님이 자주 말했던 발할라(Valhalla) 같기도 했고,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말하는 천국(Heaven) 개념 같기도 했다. 사람이 죽으면 어디로 가냐는 질문에 어른들이 으레 아이들에게 말하던 그 곳일까. 그 곳에 살아 있는 사람이 갈 수 있는 걸까. 먼저 죽은 나비에게 그 곳은 낙원이 맞을까. 사랑하던 나비와 헤어졌는데.

 

 

 “하지만 그 길은 무척이나 험난했습니다. 길을 막는 거센 바람에, 나비는 몇 번이나 바닥에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자랑스러웠던 하얀 날개는 어느 새 진흙투성이가 되었고, 먼지가 가득해져 새카맣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새까매진 나비를 모두가 비웃었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이제 검은 나비가 된 나비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아침에도, 낮에도, 밤에도. 사이키델리카를 향해 날았습니다.”

 

.

.

.

 

 잠시동안의 침묵이 이어지고, 이번엔 다른 곡이 스피커에서 울려 퍼졌다. 참말로 궁금한 곳에서 끊는 덴 선수구마. 그렇게 생각했다. 그렇게 자랑스러운 하얀 날개까지 포기하면서 날아오른 나비 씨는 과연 낙원을 찾았을까. 어째서, 몇 번이고 넘어지고 검게 물들면서도 그렇게 포기하지 않고 일어날 수 있었던 걸까.

 

 문득, 그 나비 씨가 스승님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랑스럽고 완벽했던 인형. 자랑이었던 하얀 날개였던 나즈나 형은 이제 Valkyrie에 없다. 그 날 이후 무너져버린 Valkyrie를, 몰락한 오기인인 스승님을 모두가 비웃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스승님은 날아올랐다. Fine를 향해, 모두가 승복했더라도 아직 나는 죽지 않았다며, 잊지 않았다며 날아오를 수 있었던 것이다. 더 이상 희지 않은, 검게 변해버린 날개로. 까마귀인 자신과 함께.

 

 

 “그리고 오랜, 아주 오랜 세월이 흘렀습니다. 몸도 마음도 너덜너덜해져서 꼼짝도 할 수 없게 된 그 때. 검은 나비는 드디어, 사이키델리카의 입구를 찾았습니다. 녹음이 가득한, 죽은 자들이 행복한 낙원. 사이키델리카를 드디어 찾은 것입니다.”

 

 

 스피커에서는 잠시 숨을 들이키는 소리가 났다. 너무 오랫동안 목을 쓴 탓이었을까. 커다란 한 번의 숨소리 뒤, 스피커 너머에서는 다시 다음 줄거리를 이야기하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리고 카게히라 미카는, 이야기가 끝나고 방송 종료를 알리는 음악이 끝난 뒤에도 오랫동안 그 자리에서 굳은 듯, 멍한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카게히라, 저녁 먹을 시간이라는 게야.”

 

 

 규칙적인 똑똑 소리와 함께 저녁 식사 시간을 알리는 목소리가 문틈 너머로 들려왔다. 학교가 끝나고, 아르바이트가 끝나고도 하루 종일 미카는 멍한 표정으로 침대 위에 앉아 있었다. 평소라면 아무리 피곤해도 씻고 옷은 갈아 입고 있었어야 할 시간인데, 오늘은 교복 상의도 벗지 않은 채 간신히 가방만 벗어 둔 상태였다. 분명 이 상태로 슈를 맞이하면 대판 혼날 것이리라 생각하면서도, 문 두드리는 소리가 바로 근처까지 오기 전까지 둥둥 떠다니는 상념을 잡지 못하고 있었다.

똑똑. 규칙적인 노크 소리가 조금 더 크게 들려왔다.

 

 

 “카게히라!”

 “응아아, 스승님 잘못했데이! 바로 옷 갈아입고 나가겠데이!

 “설마 아직 옷도 갈아입고 있지 않았던 것이냐, 하여간….요새 정신을 어디다 빼놓고 다니는 게야.”

 “미, 미안하데이…요새 정신을 이리 빼놓고 있어가….”

 “후딱 갈아입고 나오라는 게야, 다 식어버린 저녁을 먹고 싶지 않다면 말이다.”

 

 

 발소리가 다시금 멀어져 갔다. 당장이라도 들어와서 이게 뭐냐고 꾸지람을 듣던 과거와는 확연히 달라진 풍경이다. 의아하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최대한 빨리 옷을 갈아입기 시작했다. 스승님이 어쩐지 평소보다 상냥한 것 같다고 생각하면서, 여전히 의구심을 떨치지 못한 채.

 

 

 “카게히라.”

 

 

 평소보다 가라앉은 목소리로, 슈는 미카의 이름을 불렀다. 어리둥절한 듯한 눈빛이 그에게 꽂혔다. 원래 식사 중에 대화를 나누는 건 그의 스타일이 아니었다. 평소라면 미카가 신이 나서 이야기를 이어가고, 슈는 밥 먹는 중에 대화하면 입 안에 있는 것이 튀지 않겠느냐고 타박을 할 일이었다. 그 작은 규칙 아닌 규칙이 깨진 것이 의아했는지, 어리둥절해하면서도 걱정이 가득한 눈빛이 식탁 너머로 꽂혀오는 것이 느껴졌다.

 

 

 “너는 낙원을 바로 앞에 두고 돌아서는 것을 이해할 수 있느냐.”

 “응아, 혹시 오늘 방송 얘기가? 스승님도 들었구마.”

 “그래, 꽤 인상깊은 내용이어서 오랜만에 집중해서 들었던 것이야.”

 “확실히 인상깊긴 했다. 근데 나는…이해가 좀 안되가…아까부터 계속 생각하고 있었다. 와 나비 씨는 그런 선택을 한 것인가에 대해서.”

 “나는 이해가 간다는 것이야.”

 

 

 그 말과 함께 식기가 접시에 가지런히 부딪치는 소리가 났다. 자신 몫의 식사를 끝냈다는 무언의 신호였다. 숨을 고른 후, 슈는 상대가 들을지 말지 모르는 혼잣말처럼 이야기를 이어갔다.

 

 

 “그 나비의 날개가 검어져 버릴 정도로 그 길은 고되지 않았느냐. 모두가 날개가 검어져 버리고 찢겨진 검은 나비를 비웃었다고 이야기했었지. 그런 상황에서 사이키델리카로 들어갈 수 있었겠느냐. 사랑했던 흰 나비가 자신의 모습을 보면 어땠겠느냐.”

 

 

 그 말은 미카를 향한 것 같으면서도, 아닌 것 같았다. 시선이 어디를 보는지 알 수 없는 그런 말이었다. 지금은 없는 옛 멤버를 향한 것 같기도 했고, 슈 자신을 향한 것 같기도 했다. 하지만 여전히 완전히 이해는 할 수 없었다.

 

 

 “스승님은, 검은 날개가 추하다고 생각하는 기가?”

 

 

 돌아오는 답은 없었다. 쓸데없는 생각 말라던 질책조차도 없는 침묵이 오랫동안 지속되었다.

 

 

 평소보다 불편했던 식사가 끝난 뒤에도 오랫동안 머릿속에선 슈의 말이 떠나지 않았다. 안 그래도 복잡했던 실타래가 더 얼키고 설켜 회로가 꼬여 고장난 인형이 된 것 같았다. 머리를 부여잡은 채로 그는 책상에 엎드렸다. 뭔가 분하고, 슬픈 느낌이 들어 눈물이 났다. 마침내 고장나버린 걸까. 그칠 줄 모르는 눈물을 닦으며 오지 않는 잠을 억지로라도 청하기 위해 잠자리에 들었다. 우는 모습은 들키고 싶지 않았다.

 

 바람에 떨어지고 날개가 검어지고 찢어지더라도 사이키델리카를 향해 날았던 모습은 그 날 fine를 맞아 다시 일어난 모습과도 같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오시상 역시도 자신을 그렇게 생각했던 걸까? 검은 나비에 이입했던 거였을까?그렇기에 이해할 수 있다고 했을까? 더 자세히 묻고 싶었으나, 지금의 그는 자신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을 것이다.

 답답했다. 답답하고 분해서 잠이 오지 않았다. 이 마음을 어쩔 줄 몰라, 결국 그는 침대를 박차고 일어나 노트를 펼쳤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들을 그저 쏟아내고 싶었다. 그것은 때로는 글이 되고 때로는 그림이 되어 노트를 빼곡히 채웠다. 정말로 내는 고장난 인형이 되어 버린 게 아닐까.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멈출 수 없었다.

 

 

 

 “어느새 무대를 다 구상해놓았더구나.”

 “응아앗?”

 

 

 아침을 먹던 중 무대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자, 미카는 입에 빵을 문 채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나는 아직까지 무대를 구상한 적이 없는데? 대체 오시상은 뭘 본 기가?

 

 

 “동화를 재해석하는 방향을 생각하고 있었다니, 불출도 마냥 불출은 아닌가 보군.”

 “응아아…응아아아아아아…”

 

 

 마치 부끄러운 것을 들켜버린 양, 빵을 입에 물고 있는 탓에 말을 못 한 채 그저 손사래를 치기만 하는 미카를 보며 슈는 온화하게 웃었다. 카게히라 미카가 정말 오랜만에 본 듯 한, 그런 따뜻한 미소였다.

 

 

 “구상한 것 그대로 다음 무대를 짤 것이니, 준비해두거라.”

 

 

 딸각. 식기가 접시에 부딪치는 소리와 의자를 조심스레 빼는 소리, 문을 열고 나가는 소리가 먼 곳에서 들리는 것처럼 아른거렸다. 대체, 대체 오시상은 내 노트에서 뭘 본 기가? 타이밍을 놓쳐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멍하니 얼굴만 빨개진 채 굳어 있던 미카는, 제 휴대폰에서 울리는 알람 소리에 겨우 정신을 차려 학교로 향했다. 학교에 가면 연습 시간에 뭐라고 말해야 하나를 고민하면서.

 

 미카가 본의 아니게 노트를 들킨 이후부터, 공연 준비는 착착 진행되었다. 무대의 컨셉과 곡은 뼈대를 잡자마자 빠르게 완성되었고, 이제 남은 것은 당일날까지 최대한 무대를 이해하고 연습하는 것이었다. 구상을 한 것(?)이 미카이기에 무대 이해와 연습에는 문제가 없었으나, 그는 연습을 하는 내내 계속해서 의아해했다. 대체 오시상은 내가 아무렇게나 써 놓은 잔상에서 뭘 본 것인지, 이렇게 난잡하고 날것의 실패작에 가까운 것을 무대 위로 바로 올려도 되는 것인지. 슈의 안목을 믿는다고 생각하면서도, 거기서 무엇을 본 것인지에 대해서는 계속 두려웠다. 나같은 불출이 과연 이런 식으로 개입해도 되는 걸까 하는 마음이 교차했다.

 

 

 “옛날 옛날, 한 나방이 살았습니다. 검고 투박한 날개를 지녔던 나방은, 아름답지 않다는 이유로 모두에게 비웃음을 사곤 했습니다. 그러나 그 나방은 그런 비웃음과 힐난에도, 그저 날개를 접은 채 나무 뒤로 숨기만 할 뿐이었습니다. 나는 아름답지 않으니까, 검게 물들어 있으니까. 나방은 자신이 비웃음을 살 만한 존재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방은 눈부시게 아름다운 하얀 나비 둘을 보게 되었고 그 둘이 아름다운 춤을 추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 춤은 너무나도 아름다워서 눈을 뗄 수 없었고, 나방은 나무 뒤에 숨어서 하얀 나비 둘이 아름다운 춤을 추는 것을 낮에도, 밤에도, 하루도 빠짐없이 지켜보곤 했습니다. 그러면서, 어느새 그 나비들을 마음 깊이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자신은 검은 나방이기에 그들 앞으로 갈 수 없어, 그저 나무 뒤에서 그들이 춤추는 것을 지켜보고, 어떨 땐 몰래 춤을 따라해보는 것밖에 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나방은 행복했습니다.

 비바람과 천둥번개가 숲을 덮친 뒤, 나방은 걱정되는 마음 반, 설레는 마음 반으로 나비들이 춤을 추던 곳을 찾아갔습니다. 아름다웠던 숲은 폐허가 되었고, 폐허가 된 숲에서 흰 나비 하나가 하염없이 울고 있었습니다. 슬프게도, 나머지 한 마리의 나비가 그만 죽고 만 것이었습니다. 나방은 춤을 몰래 지켜보던 예의 나무 뒤에 숨어서, 울음소리가 들리지 않을 정도로 작게 울고, 또 울었습니다.”

 

 

 약간 잠긴 듯한 노랫소리에 관중들이 숨을 죽이고 있었다. 검은 의상을 입으면서 춤을 추고 있는 미카는, 마치 한 마리의 작은 아기 까마귀같았다.

 

 

 “어느 날, 나방은 남겨진 나비가 사이키델리카로 간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다시 한 번 그들의 춤을 보고 싶어, 그 아름다운 춤을 다시 한번만 볼 수 있다면. 나방은 사랑하는 흰 나비를 따라 험난한 길을 따랐습니다.

 멀고도 험난한 길 끝에, 흰 나비의 날개가 찢어지고 더러워져 검은 날개가 되는 것을 나방은 보았습니다. 사랑하는 나비가 자신이 당했던 것과 같은 수모를 받는 것이 마음이 아팠습니다. 아름답지 않다고 비웃음받고, 배척받는 건 나로도 족한데, 사랑하는 나비가 그런 취급을 받는 것이 너무나도, 너무나도 슬펐습니다. 하지만 이젠 검은 나비가 된 나비는 포기하지 않고 사이키델리카를 향해 날았습니다. 그 모습마저도 너무 아름답다고 느껴져, 나방은 계속해서 그를 따라 날았습니다. 그의 날개도 찢겨지고 상처투성이가 되었음에도요.”

 

 

 검은 의상을 입은 슈가 등장했고, 두 사람이 교차하여 노래를 불렀다.

 

 

 “마침내 나비는 사이키델리카의 입구에 도착했습니다. 결국엔 해냈구나. 나방은 생각했습니다. 마침내 나비가 행복해질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내 일이 아님에도 기뻤습니다. 하지만, 검은 나비는 왔던 길을 되돌아갔습니다. 나방은 깜짝 놀라, 몸을 숨기는 것도 잊은 채 검은 나비를 따라갔습니다.

 한참을 날고 날아 도착한 곳은 어느 황량한 사막 위였습니다. 그 곳에서 최후를 맞이하려는 듯, 검은 나비가 모래밭 위에 누워 가늘게 떨고 있었습니다. 나방은 필사적으로 그를 향해 날았습니다. 모래바람이 불어 날개가 찢겨지고 너덜거림에도 필사적으로 그를 향해 날았습니다.”

 

 

 찢어질 것만 같은 목소리로 노래를 하며, 검은 옷을 입은 미카가 슈를 향해 천천히 다가가며 노래를 불렀다.

 

 

 “필사적으로 나비 앞으로 날아간 나방은, 마지막 힘을 쥐어짜내어 춤을 추었습니다. 그렇습니다. 비바람과 폭풍우로 한 나비가 죽기 직전, 두 나비가 함께 췄던 아름다운 춤이었습니다. 투박한 검은 날개를 가진, 찢어지고 너덜거리는 날개로 추는 춤은 아름답진 못했지만, 나방은 있는 힘껏 춤을 추고, 또 추었습니다. 그러자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최후를 기다리고 있던 검은 나비가 일어나서, 자신과 함께 춤을 추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더이상 희지 않은, 검고 너덜해진 날개로, 마치 예전으로 돌아간 것처럼 춤을 추고, 또 추었습니다. 그 춤은,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그들의 마지막 춤이었습니다.”

 

 

 검은 옷을 입은 두 사람이 함께 춤을 추었다. 서로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 춤을 추고 또 추면서 함께 노래했다. 그 모습에, 관중들은 시간이 멈춘 듯 두 사람의 춤을 눈을 떼지 못하고 지켜보기만 할 뿐이었다.

 

 

 “카게히라.”

 

 

 무대가 완전히 끝나고 아무도 남지 않은 텅 빈 지하 무대에서, 슈는 미카의 이름을 불렀다. 공연이 끝난 뒤의 그는 아직도 얼떨떨한 모습이었다. 아무 것도 다듬지 않은 날 것인데, 이렇게 반응이 좋을 수가 있었던 것일까. 이건 필시 이걸 잘 다듬고 무대에 올린 스승님의 공일 테다. 그런 생각을 하며, 미카는 슈를 가만히 쳐다보았다.

 

 

 “와?”

 “결말 부분이, 아쉽지는 않았더냐?”

 “스승님이 그런 걸 물어보다니 의외데이…”

 

 

 조용히 중얼거리며, 미카는 시선을 떼지 않은 채 슈를 쳐다보며 웃었다.

 

 

 “하지만 막 아쉽거나 그렇지는 않았데이. 나비 씨가, 마지막 춤을 자신과 함께 춰 줬다는 것만으로도 나방은 분에 넘치도록 행복했을 기다.”

 

 

 해맑은 웃음이 슈의 보랏빛 눈동자에 꽂혔다. 그 눈부신 미소가 왠지 슬퍼 보여, 슈는 들릴 듯 말 듯 중얼거렸다.

 

 

 “내가 나비라면 말이다…”

 “응아?”

 

 

 의구심 가득한 오드아이 빛 눈동자를 피하며, 얼굴이 살짝 붉어진 채 슈는 중얼거리듯 말했다.

 

 

 “그 나방이 그렇게 오랫동안 따라오도록 내버려 두진 않았을 게다.”

 “응아아?? 스승님 그게 무슨 말이고?”

 “아무것도 아니란 게야. 이제 슬슬 돌아가도록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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